갈수록 더 진해지는 그들의 향기

by 서하

맞벌이 부모님 아래서 자란 내게 유년의 배경은 늘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여섯 살 무렵 분가를 한 뒤에도 주말마다 그곳을 찾을 만큼 나의 정서적 뿌리는 조부모님께 닿아 있었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독 과묵하고 얌전한 분들이셨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삶이 던져주는 것들을 묵묵히 수용하며 살아가던 분들.

어린 내가 곁에서 끊임없이 조잘거려도 그저 잔잔한 미소로 들어주실 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하거나 혼내신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금도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사진처럼 남아 있다. 1층 할머니 댁에 살던 아주 어릴 적, 귀가 찢어질 듯 아파 소리를 지르며 울었던 밤이 있었다.

부모님조차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할 때 윗층에서 할아버지가 내려오셨다. 할아버지는 내 귀에 조용히 손전등을 비추시더니 참기름 한 스푼을 가져오라 하셨다.

귀 입구에 참기름을 대고 빛을 비추며 기다리자,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나온 개미 한 마리가 보였다. 개미를 잡자마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그것은 선조의 지혜이자, 나를 향한 가장 고요한 구원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런 분이셨다. 신문을 읽으실 때 내가 어깨 위를 타고 놀아도 방해된다는 내색 없이 온몸을 내어주셨다.

일곱 살 때 집 근처 찻길에서 트럭에 치이는 큰 사고가 났을 때도 그랬다. 트럭 바퀴에 다리가 깔린 나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려는 트럭 아저씨에게 나는 울며 소리쳤다.

"혼자 못 가요! 우리 할아버지랑 같이 가야 해요!"


벨 소리에 달려 나와 대성통곡하는 손녀를 본 할아버지의 파랗게 질린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예순을 갓 넘긴 할아버지는 이미 허리가 좋지 않아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나를 업은 아저씨는 앞서 달려가고, 뒤처진 할아버지는 손녀를 놓치지 않으려 입술을 굳게 깨물며 절뚝거리며 쫓아오셨다. 그 고통스러운 걸음걸이 속에 담긴 사랑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조부모님과도 사춘기가 되면서 조금씩 거리가 생겼다. 할머니 댁은 공부에 바쁜 내게 '재미없는 곳'이 되었고, 매주 가던 발걸음은 한 달에 한 번으로 뜸해졌다. 고등학교 1학년, 한창 내신 시험에 매달려 나 살기 바빴던 그때 할아버지는 일흔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치매가 오셨음에도 손녀의 목소리에는 답해주시던 할아버지였는데, 병원에 계신 2주 동안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드리지 못했다.


할머니 역시 순함 그 자체인 분이셨다. 며느리들에게조차 잔소리 한마디 없이 그저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삶을 사셨다. 20대가 되어 서울 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두세 달에 한 번 할머니를 뵈러 부산에 내려갔다. 대단한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아이고, 왔나. 밥 묵어라", "이것도 좀 먹어라." 하는 정스러운 권유가 전부였지만, 그 안에는 늘 온기가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와 저녁 약속을 마치고 늦게 할머니 댁에 자러갔는데, 자다 깬 할머니가 갑자기 일어나 화장대 구석에 모아둔 현금 30만 원을 쥐여주셨다. 본인은 안 입고 안 먹으며 아낀 그 돈을, 손녀가 올 때마다 비밀스럽게 건네주던 그 마음의 무게를 그때의 나는 다 알았을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마지막 인사를 놓쳤다.

장례를 마친 뒤 동료들에게 보낸 감사 메일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만남이 있으면 작별이 있다는 말, 생각보다 그 시간이 빠르게 온다는 말이 깊게 와닿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겠지요. 제 인생의 한 챕터를 장식해주는 동료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항상 평안하시길."


나는 종종 삶의 끝을 생각한다.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사실 시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흐른다. 인연의 유한함을 생각하면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처럼 삶의 끝을 응시하면 지금 겪는 소란스러운 일들이 그리 대단치 않게 느껴진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할 뿐이다.


나의 뿌리였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참 잔잔한 분들이셨다. 그런 분들의 특징은 곁에 있을 때는 존재감을 잘 모르다가, 그 자리가 비었을 때야 비로소 그 향기가 진동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 결핍을 드러내며 타인을 탓하고 옭아메기 쉬운데, 조부모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 탓을 하지 않고 삶을 고결하게 수용하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잔잔한 향기가 내 삶에 더 진하게 배어 나온다.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사랑이어서 더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분들이 물려주신 이 고요한 수용의 미덕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젊은 나의 조부모님 그리고 그들 집에서 놀던 사고뭉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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