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은 하되, 구원은 내가 한다

by 서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든 시기를 지날 때마다 부적처럼 새기던 말이었다. 삶이 자꾸만 시련을 던지며 내게 가르치려는 게 뭘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때 내가 발견한 단어는 ‘인내‘였다. 삶이 내게 참으라고 하는구나, 조금만 더 견디면 곧 지나갈 테니 지금은 그저 인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충실히 참았다. 인내하는 자세는 여러모로 내게 방패가 되어주었다.

내가 참아서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많았고, 적을 덜 만들었으며, 감정에 휘둘려 후회할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조급한 분노보다 신중한 기다림이 낫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기다리고, 참고, 인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삶은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문제를 던져준다. 인생이란 결국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문제가 생기면 그저 인내했다.

이해하는 척하며 감정을 억눌렀고, 도리어 참지 못하는 내 그릇을 탓했다.


그런데 인생에 공짜는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저절로 풀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삶이 던져준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본질을 마주하고 풀어내야만 한다. 덮어두거나 회피하면 문제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게 뿌리를 내리며 영토를 확장한다. 그러다 어느 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괴물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직면해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이 문제가 나의 부족함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잘못으로 촉발된 것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100% 객관적일 수 없어도 괜찮다.

내 인생의 문제이기에 내 관점에서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 본질이 ‘남 탓’으로 결론 나도 괜찮다. 무조건 내 탓으로 돌리는 게 건강한 태도는 절대 아니다.

삶의 많은 문제는 실제로 타인의 잘못이나 불합리한 상황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문제가 누구의 잘못으로 발생했든 간에, 내 인생이기에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나에게 있다.

문제를 일으킨 타인과 원만하게 해결해보려 노력하겠지만, 알다시피 상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때도 열쇠는 여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다.

변하지 않는 상대와 단절할 방법을 찾거나, 나만의 확실한 선을 그어 나를 보호하거나, 혹은 내 그릇과 능력을 키워 스트레스가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거나.

선택권은 언제나, 야속하고 정직하게도, 나에게 있다.


나는 남 탓만 하느라 정작 자기 인생을 구원할 기회를 놓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분명 상대의 잘못이 맞고 상황이 나쁜 게 맞다.

하지만 그러고 가만히만 있으면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결국 내 인생을 구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그건 인생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의무다.


고통이 닥칠 때, 파워 F인 나는 그 아픔을 진하게 느낀다. 그럴만한 아픔이고 힘들어 할 만하다. 그런 다음 T의 이성으로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감정을 분리하여 해결해야 한다. 소통을 했는데도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내 칼을 뽑고 내가 움직여서 내 인생 길을 해쳐나가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면 싸움닭처럼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능력을 키워 스스로를 그 상황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상황에 매몰되어 자신을 구원하려 노력하지 않은 채 타인만, 상황만 원망하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함께 침몰시키는 일이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것’은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삶은 내게 수동적인 관망자에서 내 인생을 운전하는 주체자로 서라고 가르친다.


한없이 약한 나, 힘들고 울고 싶다. 다 그만두고 사라지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내 삶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기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저버릴 수 없다.

회피하지 않고, 내 삶에 대한 직무를 유기하지 않으며, 매 순간 직면하고 풀어가며 나아갈 것이다.


오직, 그래야만 ‘이 또한 지나가는’ 그 시간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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