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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09. 2021

경력 공백,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경력 공백은 길 찾는 과정

그때는 왜?


다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과 함께 일한 지난 4.5년 동안 꾸준히 들어온 말이 있어요. "왜 그때는 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요?", "진작에 시작할 걸 그랬나 봐요.", "계속 일했더라면 지금쯤 OOO가 되었을 텐데…"


그 말을 감싸고 있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력 ‘공백’이라는 단어에 실려 있는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드는 기운은 사회와 고용시장에 존재하는 편견 또는 차별이 더해져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자책하거나 지난 시간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하죠. 돈을 벌지 않았다는 것 또한 한몫을 차지할 것 같아요. 내가 쏟은 땀과 노동의 대가이고, 실체적이고, 사는데 필수적인 ‘돈’이 일을 하고 있는 나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나 사이를 구분하는 잣대인 건 사실이니까요.




그때의 나를 만나러 가는 중


잠깐만 시간 여행을 해볼까요? 지금부터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거예요. 타임머신을 타고 경력 공백이 시작되기 직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경력 공백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를 한 명 떠올려 보고 그 사람이 되어 보세요. 그때의 상황이 그려지나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들이 내 마음속에 내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요. 고민이 많이 됩니다.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해요. 그리고 결국 일을 쉬기로 결정했어요. 당시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예요. 여기까지!


“What If….” 가정문으로 그려 보는 상상의 내 행동과 그때 실재했다면 내가 취했을 행동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큽니다. ‘아, 그때 일을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나’는 상상 속의 그 모습일까요?


그렇다면 난 공백이라 부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 일로 ‘돈’을 벌었는지, 노동시장에서 정의하는 직업의 이름을 쉽게 붙일 수 있는지의 기준을 잠시 걷어 내고 생각해 봅시다. 내 시간과 재능을 들여 몇 달 이상 지속했던 일을 하나씩 끌어올려봅니다. 처음엔 기억이 뭉툭할 수 있는데 조금씩 조금씩 선명하게 살아날 거예요. 이불 킥을 부르는 일, 해봤는데 원하는 만큼 잘 안 된 일, 해봤으니 됐다 싶은 일, 좋아할 줄 몰랐는데 해보니 꽤나 재미있었던 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신나서 활활 불태우며 했던 일, 잘한다고 남들한테 인정받은 일, 내 재능이 남에게 도움이 되었던 일, 나름 꾸준히 했던 일. 


그렇게 흔적으로 남은 일련의 행동들, 흘러 보내고 잊어버릴 뻔했던 내 일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나를 짓고 채웠던 나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내가 거기에 서 있는 거죠. 많은 것을 경험했고 충분히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어쩌면 경제적 보상 요인을 통제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디에 내 시간과 머리와 몸을 쓰는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모먼트를 맞이할 수도 있겠어요. 



언어화할 수 있는 힘


그다음 단계는 내가 했던 행동과 행동에서 얻은 경험을 글로 옮겨 적어보는 거예요. 멋지게 꾸미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름을 제대로 붙일 수 없었던 성취와 배움을 구체화하고 언어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활자 속의 내가 새롭게 보일 거예요. 아무것도 적을 수 없다면 아직 가장자리 생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모두 아쉬움이 남았던 시간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라요.


경력 공백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그 시간 동안 느끼고 경험하고 얻은 것들을 정성껏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흔쾌하게 들지 않을 겁니다. 긍정적인 점은 공백의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보는지 바라보는 척하는지는 제일 먼저 내가 알고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도 알아볼 수밖에 없지요. 어떤 힘을 실어 나의 스토리를 전할지는 온전히 내게 달려있다는 것.




길 잃기 안내서



우리는 (아직까지 없었다면) 앞으로 살면서 비어 있다고 여겨지는 시간을 만날 때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감각을 느낄 거예요. 그럴 때 떠올리면 좋을 것 같은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에 나오는 구절을 가져왔어요.


“19세기 수색구조팀은 곤란한 지경으로 길 잃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사람들이 길 잃었던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깨달았는데, 일정이 빠듯하지 않은 사람,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할 줄 알고 자취를 읽을 줄 알고 아직 지도에 나오지 않은 장소에서라도 방향을 찾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일주일쯤 경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곤란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역사학자 에런 색스는 이런 답을 보내주었다. "탐험가들은 늘 길을 잃었습니다. 모든 장소가 처음 가보는 장소였으니까요. 아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자신이 충분히 생존할 수 있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였을 겁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문장이에요.


길을 잃는 것은 낯선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일이다.
이 세상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커진 셈이다.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은 멈춰 서서 생각할 줄 아는 기술, 미지 속에서 당황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 기술, 길 잃은 상태를 편하게 느끼는 기술이다.



이제 첫 단계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언어로 재구성된 나의 경험치를 재료로 삼아 낯설게 느껴졌던 기회들과 나를 연결해 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가 보기로 해요. 다음 글에서는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내가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경력, 나의 서포터들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을 세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내 고민은 나만 하는 걸까, 이런 고민도 얘기해도 되나, 망설이고 계신가요? 이제 고민 그만하시고 <고민 들어주는 언니들>에게 보내주세요. 저희들은 언제나 여러분의 고민을 잘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고민 투하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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