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학생 시절 밴드 활동을 하면서 자우림의 노래를 많이 알게 되었다. 'Vlad', '밀랍천사', '일탈' 등을 합주하며 자우림을 알게 되고 곧 입덕하게 되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자우림 8집이 다행스럽게도 군입대 직전에 나와서 안도하며 8집을 사서 들었고, 2013년 그린플러그드 공연에서 ‘가시나무’를 듣고 마음이 한껏 정화된 느낌으로 집에 돌아가던 순간도 떠오른다. 이번 자우림의 데뷔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며 내 삶의 순간마다 함께했던 자우림을 추억한다.
25년을 넘게 활동한 밴드답게 많은 명곡이 있지만 특히 몇 곡은 내게 감정적으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그중 한 곡은 '샤이닝'. 산책하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샤이닝을 듣곤 했다. 샤이닝은 차분히 가라앉는 우울한 노래이긴 하지만 되려 내겐 희망을 주는 곡이었다. 슬플 때 발라드를 듣는 것처럼 한껏 우울한 샤이닝을 들으면 우울함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기운이 점차 올라왔고, 우울함이 떠난 자리를 그래도 살아가야지라는 낙관이 채웠다.
대학교 복학 후 인간관계, 학업 등 모든 것이 내 마음 같지 않던 시절의 나는 ‘슬픔이여 이제 안녕’을 많이 들었다. 아마 슬픔과 이별하고 싶었던 본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면서 슬픔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고 영원히 곁에 있을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픔을 조절하고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이라는 것도. 나의 슬픔을 안아주는 것도 나의 역할임을 배웠다.
이 곡은 오랜 친구(=슬픔)와 영원히 작별하고 싶었던 절박한 순간에 쓴 곡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는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요.
‘슬픔이여 이제 안녕’ 코멘트 (스페이스 공감 중)
삶의 밝은 순간에도 자우림의 노래가 함께했다. 특히 내게 따듯하게 와닿은 곡은 ‘17171771’과 'Something Good'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많이 들었던 17171771의 경우 이 노래의 영향을 받아 내게 좋은 날씨의 기준은 가사에 등장하는 5월의 햇살과 10월의 하늘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또 Something Good을 들으며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낙관을 느꼈다. 정말로 내게도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한번 더 믿어보게 해 준 노래였다.
영화는 자우림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대표곡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풋풋했던 예전 모습들도 많이 나온다) 또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준비하며 멤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종합 선물과 같아 자우림의 음악을 좋아했던 이라면 누구나 쉽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영화 중 임진모 평론가가 자우림은 자우림의 확고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 표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떤 분야에서라도 나의 영토를 가질 수 있을까. 여성 보컬 밴드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영토를 잡고 뿌리내린 것이 대단하다.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런스의 모습이 많아야 한다고 믿는다. 자우림은 이미 많은 이들의 위로가 되었지만, 이를 넘어 건강한 음악 생태계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자우림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힘에 무엇이 있을까.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25년이 넘는 세월을 잘 넘어온 근간에는 무엇보다 멤버들의 선한 성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에도 서로를 배려하고 위해주는 연대의 마음이 영화에도 잘 나타난다. 자우림은 낙천적인 패배주의가 본인 음악의 기반에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낙천적인 패배주의를 가지기 위해선 선한 마음, 그리고 지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누구보다 성실히,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 낸 낸 관계는 빛이 난다.
덕질만큼 팬과 아티스트 모두를 살리는 관계가 있을까? 아이돌이든 아티스트이든 덕질을 통해 팬들은 일상을 버티고 팍팍한 삶을 헤쳐나간다. 아티스트는 팬들 덕에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힘을 얻고,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는다는 위안을 받을 테니, 결국 양쪽 모두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셈이다.
덕질은 즐겁지만, 동시에 시간이 흐르면 팬심이 옅어질 수도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을 아티스트와 나의 호시절인 것처럼 열렬하게 덕질하는 것이 답이라고 믿는다. 내가 이들을 언제까지 좋아할지 알 수 없으니, 좋아할 수 있을 때 치열하게 좋아하자는 마음을 가질 때 덕질은 더 행복해진다. 고달픈 세상에서도 내가 즐길 콘텐츠가 있고 열렬하게 사랑을 주면 된다는 안도감의 힘은 크다. 행복이 내 손안에 움켜쥘 수 있을 때 더 살아나는 것이라면, 덕질은 내 손으로 명확하게 쥘 수 있다.
앞으로 더 자주 자우림의 공연에 가고 더 많이 노래를 듣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퍼포먼스를 눈과 귀로 사진 찍을 수 있는 순간이 내 청춘의 호시절이 아닐까. 나의 한 시절을 선명하게 밝혀주어 고맙다.
요즘 누군가 나의 근황을 묻는다면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들을 작게나마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머리도 길러보고 있고, 소홀히 했던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이사도 준비하고 있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로 채우는 일상이 낯설지만 설렌다.
이렇게 새로운 순간을 준비하거나 각성이 필요할 때, 뭔가 답답하거나 박차고 나가고 싶어질 때 '이카루스'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두려움이 지금보다 더 많던 시절, 이카루스를 들으며 이렇게 멍하게만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다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각성하곤 했었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이카루스'에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글은 결국 다 쓰고 보니 어느 팬의 팬레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 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 자우림 이카루스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