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냄새를 좋아한다. 서점에 들어섰을 때 풍겨오는 특유의 향이좋다. 진열대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꽂혀있었다. 사람들 눈에 잘 보이는 곳에서부터 저 안쪽 보이지 않는 틈에 꽂힌 책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살펴보며 얻은 몇천 권의 책이 가득하다. 찾았던 책 한 권과 그날 마음에 들어온 책 한 권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종이를 넘기면 노고가 보인다. 문득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의미를 남기는 이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한 사람의 시선이 의미로 남겨지기까지의 수고를 들여다볼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나에게 꼭 맞게 흡수되는 의미가 있다면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다른 이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나의 의미를 남긴다. 의미가 온기가 되는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었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내려서 10분간 걸어가야 한다. 사거리 신호등이 고장 나 교통경찰 몇 분이 나와 정리를 해주고 계셨다. 수도 없이 지나가는 차들, 이 순간 보행자는 경찰의 신호만을 의지한다.
"네, 이제 건너도 되세요. 조심하세요-"
친절이 담긴 짧은 인사를 들으며 긴 건널목을 지난다. 누군가에게 있어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을 보호하기도 한다. 당연한 것은 없음에 티 나지 않는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후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러 1층 편의점에 들렀다. 삼각김밥 하나를 들고 가니 사장님께서 말을 건네셨다.
"날씨가 정말 춥죠? 추우니까 따뜻하게 데워먹어요."
평소라면 차가운 삼각김밥도 상관없이 먹었겠지만, 이날은 다르다. 따뜻한 목소리에 그냥 나가기가 멋쩍어 전자레인지 문을 연다.
"어제 바닷가를 갔는데, 너무 춥더라고요. 정말 집에만 있어야겠어요."
"그렇죠,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요. 사장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30초 동안 모르는 이의 안부를 듣고 마음을 데운다. 따끈한 삼각김밥을 쥐어보니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손도 조금은 녹아내린다.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런 의미를 선물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온기를 내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하고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