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절을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기보다, 무언가를 도전하는 마음이 거절당할까 봐 무서웠다. 사실 용기는 매일 필요했다.
20살, 당시 첫 수업으로 인체드로잉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께서 대뜸 학교 밖으로 나가 1분 동안 사람들을 그려주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성적인 나로서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는 게 상당히 큰 과제였다. 흔쾌히 미소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여차저차 주어진 장수를 채워가 교수님께 들고 갔다. 10명 중 7명은 싫다고 하니, 힘들었다는 나를 보고 교수님이 웃었다. 앞으로는 더 그럴 날이 많을 거라고, 근데 그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익숙해져야 다시 도전하는 법도 안다고.
도전은 매일 있었다. 거절이 싫어 누군가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괜히 넣지 않아야 될 힘을 계속 주고 있기도 했다. 내 사람들에게 무거운 마음을 전달하기라도 하면, 미안하여 신경 쓰이는 날이 늘었다. 듣고, 나누고, 토닥여주는 날에 서로가 가진 치열함이 충분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든다. 내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덜 치열했으면 좋겠다, 잘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웠으면 좋겠다.
용기가 필요한 어느 날에는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었다. 어쩌면 용기는 이미 삶 곳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가 벽돌 틈을 오르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올라가지 않는 몸을 이끌고 몇 번을 헤맸다. 저 작은 생물도 치열함을 가지고 있다. 그 치열함에 기분이 들뜨다가도, 떨어지고, 머무른다. 무심코 밟을 수도, 밟아도 모를 수도 있는 저 작은 개미를 응원하고 싶었다. 당신과 나의 곁에 있는 용기를 응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