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출근을 하는 D군의 인사를 받고 나면 나의 하루는 8시쯤부터 시작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침 할 일을 해야겠다는 포부가 가득 차있다. 할머니의 방문을 열 때까지 말이다. 새벽부터 한의원에 가는 할머니의 방은 비어 있다. 할머니가 누웠던 자리는 장판을 켜지 않은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뜨끈뜨끈하다. 분명 세수하러 들어간 방인데, 자연스레 그 자리 위에 눕고 만다. 눈이 감기고 선선한 기온에 얼었던 몸이 노곤하게 풀린다. 그렇게 다시 잠에 들고 마는 것이다.
할머니의 방에는 많은 시간이 담겨있다. 늘 차곡차곡 정리를 하는 할머니의 습관이 담긴 공간이다. 책상 위에는 젊었을 적 여행지에서 가져온 기념품들로, 화장대에는 예부터 놓여있던 정체 모르는 병들로, 선반 밑에는 반창고와 머리 구르프 같은 잡동사니들이 제자리를 지킨다. 어릴 적 할머니의 공간을 들락날락했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몰래 매니큐어를 바르고, 이런저런 호기심을 키우던 아이. 꿈결에 어린 내가 모습을 비췄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할머니의 방에 어린 손녀가 발을 들인다. 처음 보는 물건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한다. 그렇게 라디오를 이리저리 만지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아이. 이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소리쳤다.
"어.. 여기 사람이 사는구나!!"
혼자서 한참을 신기해하더니, 말을 건네기도 했다.
"여기요, 여보세요?"
이제 라디오는 액자 뒤에 숨겨진 채, 존재가 희미해졌다. 할머니의 무릎에 앉을 정도로 작았던 액자 속 어린 손녀가 훌쩍 커버렸다. 시간을 증명하듯, 몇 년 전 찍은 할머니와 나의 모습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할머니, 근데 화장대에 저 병들은 뭐야?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응, 향수. 향수 안 쓰는데 다 선물 받은 거라 내버려 둔 거야"
장식으로라도 고이 간직하고 싶었던 할머니 마음일까.
"할머니, 그거 모르지. 옛날에 나 저 라디오 안에 사람 사는 줄 알았어"
할머니의 웃음이 꽃처럼 피어난다. 내일 입을 옷이 예쁜지, 모자는 어떤 게 좋은지 몇 번이고 물어보는 우리 할머니다. 내가 됐다- 예쁘다 하면 마음이 놓인다는 할머니의 웃음꽃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