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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소소 Oct 23. 2024

10월의 긴 밤

'선생님은 진짜 직업이 뭐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찼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11살짜리 꼬마가 던진 질문이었다. 글자를 띄어놓고 가상의 선을 그어본다. '진짜'와 '가짜', 별것 아닌 구분 선에 마음이 살짝 기울어졌다.


순간 정신을 차린다. 잠시 흔들린 마음을 보몸을 바로 세웠다. 막연한 기대를 품은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완벽한 이상에 다가서 있겠지 싶었던 바람이다. 하지만 막상 이상의 나이대에 가까워지니 다른 알게 된다. 마냥 완벽할 없다는 아는 내가 것이다. 대신 흔들리는 법을 익혀간다. 완벽하지 않아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 방법. 시간이 흘러 적지 않은 나이에 다다른 내가 알게 된 진짜 모습이다.



핸드폰에 비친 얼굴을 보고 새삼 놀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외출하는 게 익숙해진 날이다. 20대 초반에는 온갖 멋을 부리고 치장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이제 단순하고 편한 것에 눈길이 간다.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더 좋아진 나였다. 때때로 몰려오는 두려움도 이같이 덜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 확실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미래에 대해 뚜렷한 정의를 내리려 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마침내 두려움의 비중이 커지면 마음의 자리가 없어져 섣부른 판단을 하기도 한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리고, 치고 나아가야 할 때인 것처럼.   


이런 때일수록 기다려보는 게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을 ‘기다림’이라는 건, 두려움이 가득 찬 때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간다. 일생에 늘 존재해 왔던 두려움은 그토록 원하던 바를 가지게 되는 순간에도 튀어나오고 말 테니까. 그에 굴복하지 않도록 더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건, 상황에 지지 않는 분별력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됐다, 막연한 두려움에 마음의 자리를 내주지 말자.  맴도는 고민을 놓아주고서 10월의 긴 밤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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