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고, 듣고, 맡으며 지나간 것들에 뜻밖의 시선이 부여되는 순간.
그런 순간은 비 오는 날 더 반갑게 찾아오곤 한다. 며칠 사이 잦아진 가을비. 나도 모르게 세워진 레이더망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물웅덩이는 없는지, 옆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지,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신발 밑창에 나뭇잎이 붙었다. 보일락 말락 고개를 내민 축축한 나뭇잎 하나. 떼고 보니 거리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눈을 맞춰온다. 얼핏 불그스름한 색으로 물든 이들. 그 위로 투두둑 보슬비가 떨어진다. 제때 맞춰 몸단장을 하는 나무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나의 길을 가본다. 한참 걷다 보면 지나간 사람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인위적인 냄새가 아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향. 어릴 적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도 각자의 향이 생활공간 속에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호기심이 키워져서는, 우리 집의 고유한 향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문득 수없이 지나쳐가는 사람의 향에 궁금증을 품기도 하는, 그런 날씨였다. 많은 소리가 뒤섞일수록 레이더망은 더 크게 발휘되었다. 그렇다고 종일 세워둔 레이더망이 거슬리거나,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버스에 앉아 외부의 소리를 듣는 일이 그리 힘든 건 아니었으니. 덜컹거리며 바퀴가 맞부딪히는 소리, 정처 없이 달리며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 귓가를 울리는 것들에 마음을 비우고는 의외의 쉼을 찾는다.
차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는 게 좋았다. 치마 뒤끝이 젖은 걸 보면 한숨을 내쉴 법도 했지만, 왠지 들뜨는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이런 날의 낭만은 나의 언니에게서 옮겨온 걸까. 8살 터울의 친언니는 대학생 시절 낭만을 사랑했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런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가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과정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오늘처럼 비가 우수수 쏟아지는 날 성사된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집까지 뛰어가기를 도전한 우리였으니. 나는 차갑던 비보다 내리는 비를 이토록 받아낼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희열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 외에도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쭉 가본다거나 하는 그런 엉뚱함이 작성한 버킷리스트의 대부분이었다. 그날이 아직까지 달콤한 걸 보면, 아마 나는 그녀의 낭만을 사랑한 걸 수도 있으려나.
비 오는 날, 알 수 없이 울렁거렸던 마음의 단서가 풀린다. 쏟아지는 비를 받아내기에는 너무 커버린 몸이지만, 제때 맞춰 나의 낭만을 즐긴다. 늘 보고, 듣고, 맡으며 지나간 것들에 뜻밖의 시선이 부여되는 순간. 나에게 낭만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