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번 삐뚤어진 마음이 솟아나는 날이었다. 썩 좋지 않은 기분을 내내 품고 다닌 셈이다. 그런 날은 여태껏 별일 아니었던 일도 크게 부풀려지고 만다. 긴 시간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유난히 고단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북적대는 퇴근 시간의 지하철, 털썩 주저앉고는 머리를 겨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분에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만다.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할 수 있는 노래. 그런 마음을 유지하고자 눈을 감는다. 에너지는 재빨리 꺼져가고, 끓어오르는 핑계는 더해져 갔다. 어느새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그런 날은 투정이 가득한 저녁이었다.
마음의 여유 공간이 사라진 날에는 일기를 펼쳐보기도 한다.
작은 일에 심술이 많아질 때 지난 페이지를 돌려보면 도움이 된다. '속상해서 울지 말고, 기뻐서 울고 싶다.'라는 말을 적은 그맘때의 나를 회상해 보면 말이다.
"이 경우의 10퍼센트가 초기 암일 수도 있으니, 조직검사도 하고 수술도 합시다."
6개월 전 갑자기 들은 그 한마디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기 충분했다. 한참 마음이 깨질 때가 잦아서 걱정만 늘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그동안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던 마음의 공간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지금 보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더 즐겨야 한다는 생각일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페이지를 꽉 채운 건 감사였다. 그리도 싫었던 출퇴근 길을 감사해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는 산책길이 감사한 삶. 그런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나쁜 세포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시 그 한 마디에 흘린 눈물을 생각한다. '정말 기뻐서 울게 돼서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적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온몸을 점령하는 불만이 수그러진 기분이었다. 혹은 부끄러운 기분일 수도 있다. 어느새 익숙해진 나의 무표정도 조금은 풀어졌을까. 다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풀려있던 눈에 약간의 힘을 주고, 약간의 미소를 지어본다. 짧은 일기에 온 마음을 담아내고 그날 밤을 마무리했다. 다가올 아침, 어색하고도 잔잔한 미소가 남아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