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사람 없는 3층 예배당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였다. 네 살배기 아들을 안고 있던 아버지가 발버둥 치는 아들을 내려준다. 지루한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시선이 꽂힌다.
'나도 저 때 똑같이 뛰어다니곤 했었지.'
늘 3층 구석 자리에 앉았던 아빠를 따라다녔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심심한 아이를 누가 모를까. 잡기도 전에 뛰쳐나가 놀이터처럼 배회했던 날. 아마 이 아들도 그런 마음일 테다. 돌아다니는 아들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끝자리에 있는 나를 번갈아 보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다가 난간에 다리를 올리니, 지켜본 아버지가 잽싸게 달려 나간다. 아이를 조심히 내려놓고 다시 바뀐 자리에서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자리가 몇 번바뀌어도 그 자리에서 아들을 지켜주는 아버지이다. 이내 돌아다니는 게 힘들어졌는지, 아이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왔다. 말없이 눈을 맞추고 다시 아버지에게로 가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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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동화 속에 나올법한 농가 카페를 다녀왔다. 들어가자마자 고양이 두 마리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햇볕을 받아 빛이 나는 고양이였다. 다정한 소개를 건네는 사장님에게 고양이는 아들과 같은 존재인 듯했다. 언젠가 문밖으로 나가 한 달 만에 돌아왔다는 고양이. 힘들었는지 빼빼 말라 왔다는 고양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신다. 그래서인지 유일하게 리본을 달고 있는 이 아이를 사장님은 애타게 부르신다. 조금만 안 보여도 이름을 불러 찾으신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가는 길, 그 고양이가 우리를 따라 나왔다.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래도 계속 따라 나와 풀밭을 거니는 고양이다. 걱정돼 창문 밖을 쳐다봤더니 다행히 사장님이 보인다. 멀리 가지는 않는지 보이는 곳에서 고양이를 지켜보신다. 대문 앞 화분에 물도 주고, 식물을 가꾸기도 하면서 다시 그 자리에서 고양이를 돌본다. 떠나는 길에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지켜본 덕에 안심이 된다.
잠시 내가 모르는 세상에 발을 디딜 때가 있다. 그 자리에서 타인이 나누는 삶과 사랑을 바라볼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게 전달된 마음이 내 안에도 가득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