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열려있어 빛나던

by 슬로우소소

제주 어느 숲속에 불 켜진 집 한 채가 있다. 빛이 가까워지자, 그와 내가 보인다.


"너는 바다멍이랑 불멍이랑 나무멍중에 뭐가 제일 좋아?"


불멍이 제일이라는 디디의 생각에 바로 납득했다. 앞에서 타고 있는 장작은 고요함을 낭만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나도 불멍이라는 확신을 내비쳐본다. 불씨가 꺼져갈 때쯤 작은 족욕탕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온기가 채워지니 돌담을 넘어 외부냥들도 구경 왔다. 서로에게 몸을 기댄 고양이들이 꾸벅꾸벅 존다.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달빛에 기대 평안함을 누리는 우리와.



"얘는 뭐라고 부르지?"


푸른 바다에 머무른 지 3일 차. 종종 인사를 하는 동물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을 붙인 곳에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싶다는 표현이다. "이 아이는 순하니까 순이. 저 아이는 눈이 호박처럼 쨍하니까 별이." 나의 의견에 질세라 디디가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아니지. 요 아이는 풍채가 있으니까, 귀엽게 뚱뚱이로 하자. 맘에 드는지 쳐다보잖아."


내 기준에서 무언가를 정의하는 일은 익숙하다. 그렇지만 때로는 좋지 않을 수 있다. 눈에 띄는 한 면이 고정된 시선이 되기도 해서. 다른 사람이 적은 답도 나와 같으리라 판단하면 어떤 쪽에게도 실례가 된다. 어디에서나 생성되는 '빈칸'은 나만 기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달콤했던 일탈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순간도 여행에 대한 빈칸을 기재하려 했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가득한 저녁에는 더욱이. 그래서 이날을 가끔 찾아오는 특별한 밤으로 지정했다. 때마침 우연의 힘을 빌려 그에 맞는 장소도 찾았다. 오래된 와인집이었다. 평소 술을 먹지 않는 나와 즐겨 먹는 디디가 흔치 않게 잔을 부딪칠 수 있는 날 택하는 주종이다. 문은 활짝 열려있지만, 와인집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다. 그와 나, 그리고 회색빛 긴 파마머리를 한 멋진 사장님. 단정한 니트와 청바지를 입은 사장님은 꽤 유쾌하셨다.



세 사람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말한다. 엊그제 왔던 손님 이야기부터 하루 루틴에 관한 정보까지 얼떨결에 사장님을 많이 알게 되었다. 원래 가게의 단골이었다는 사장님이 18년간 한 공간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한참 대화하던 중 디디가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종이랑 펜 하나 주실 수 있을까요?" 찾는 이유를 물으니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란다. 이런 거 부끄러운데.


캘리그라피를 쓰는 사장님이 좋은 종이와 펜을 갖다주셨다. 나는 어느새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는 풍경을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곧 종이 하나를 들고 다시 오신 사장님이 한마디를 건네셨다. "그림 그리는 모습 보니까 생각나서. 떠오르는 글을 쓴 거야." 누군가가 나를 보고 적어준 글을 감상하게 될 줄도 몰랐다.


받은 글을 읽는 우리에게 사장님은 넌지시 말씀하셨다. "근데 이 글은 좋은 글이 아니야. 지금 이 테이블에 있는 셋만 공감하는 글이니까." '이 글은 ( )이다.'라는 문장이 주어졌을 때, 빈칸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우리 셋뿐이라는 걸까. 하지만 내게는 조금 소중하게 다가왔다.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으로 적용된 것 같다.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자만이 작성할 수 있는 빈칸. 여행지에서의 밤과 사뭇 잘 어울렸다.



와인의 끝을 본 적이 없다는 사장님은 빈칸 채우기에 있어서도 열려계신 듯했다. 가게 벽면에 붙여져 있던 <호불호는 주관적이다.>라는 문구처럼.


"각자에게 와인은?" 가기 전 사장님이 던진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나에게는 (특별한 날 허락된 기분 좋은) 와인, 디디에게는 (유일하게 맛있다고 느끼는) 와인, 사장님에게는 (최고의) 와인으로서 남아있게 됐다. 미소 지으며 함께 마시는 와인이기에, 단연코 최고의 와인이라 하신다.


이 공간을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기억되면 언제든지 추억을 꺼내 빈칸을 메꾸고 싶다.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한 여정은 반짝였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