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문이 열리면 보이는 것들

by 슬로우소소

엄마와 함께 카페를 돌본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침에 와서 커피를 내리는 것도 나름 익숙해졌다. 크레마가 진하게 나오는 걸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다. 원두를 쫙 빨아들인 형태가 보기 좋다고 해야 할까. 내가 이런 걸 기뻐하다니. 데스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면 문에 달린 풍경종 소리가 특별해진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새 계절을 맞이하는 중이려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다리는 일은 늘 해왔던 거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문이 열리길 바라왔으니.


한 자리에 오랜 시간 있으면 주변의 패턴이 보인다. 이 근방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루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쯤에는 보라색 점퍼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카페 앞을 지나가신다. 바로 옆에 있는 김밥집을 들른 후 보행 보조기를 의지하며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신다. 언젠가는 턱에 걸린 보조기 때문에 홀로 끙끙거리고 계셨다. 이를 발견한 엄마가 작은 도움을 주자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더 깊숙이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느릿느릿 걸어가는 할머니를 조용히 지켜봤다. 이제 할머니의 모습도 내 마음에 선명히 각인됐다.


"뜨거운 아메리카노하나유. 시럽도 한번." 화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각 문이 열렸다. 단순한 아메리카노지만 몇 분간의 정적이 내게는 어색했다. "김밥 사러 오셨어요?" 이를 깰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니 예상 밖의 답변이 왔다. "저기 건너편 과일 트럭에 있어유. 화요일마다 와유." 요즘은 날씨도 춥고 장사하기도 어려워 다들 힘들 거라고 하신다. 묻지 않았다면 건너편 과일 트럭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이제 내 시선에 새로운 장면이 추가됐다. 귤과 단감을 실은 트럭 옆에서 서성거리는 사장님.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장님이 왠지 남 같지 않은 건··· 조금 슬프다.


매일 오는 단골 아저씨의 아침밥이 새우만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따님도 소금빵 좋아해?" 빵집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줄을 섰다는 아저씨가 따끈한 소금빵을 하나 건넨다. 이 집 소금빵을 가장 좋아한다고 자부한 뒤라, 두 팔을 강력히 저어도 소용이 없다. 어느새 나의 행복지수는 차가운 손을 녹여준 소금빵으로 가득 채워지게 됐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웃음을 주고받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접점이 없던 나에게 이런 하루는 큰 변화다. 잘 모르는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는 건 생소하지만 감사한 일이었다. 모르기에 더 솔직해질 용기가 나는 걸 수도.


그렇다면 나는 그런 용기를 낼 기회를 만날 걸 거다.


한적한 오후, 커피 주문이 들어왔다. 나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 보통 테이크아웃을 하고 가는지라,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손님은 오랜만이었다. 한 잔을 내어드리고 홀 정리를 하는데 손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꽃도 같이 파시나 봐요. 저도 꽃을 배울까 생각 중인데···." 손님이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주는 경우가 흔치 않아, 이 대화를 시작으로 고민까지 나누게 됐다. "저도 카페에서 일하면서 따로 하고 싶은 일 준비하고 있거든요. 해야 할 게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가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손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대에도, 30대에도 먼 훗날에도 이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말. 처음 보는 이의 삶이 나와 닮아있었다.


타인의 삶도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가족의 삶은 얼마나 더 가깝게 보일지.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슬프다. 한 잔을 팔아보려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미안하다.


"있잖아, 내가 그래도 딸이 있어서 의지하고 하는 거야. 이번 기회로 소원했던 너랑 나 관계도 회복하고."


과연 지금이 타이밍일까. 서로 답답해 소리를 냅다 지르고 나가버리는 날은 후회막심. 자세히 보니 엄마는 의외로 눈물을 쉽게 흘렸다.



문이 열리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알지 못하는 삶이 들어온다. 응원하기도 했다가, 웃음을 짓기도 했다가, 눈물을 닦아주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문을 연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