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을 들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그러고 보면 이제 하얀색 안경을 쓴 내가 꽤 익숙해졌다. 작년 겨울 처음 만났던 안경. 안경을 맞춘 며칠 동안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거슬리던 건 색깔. "와, 손님 이거 쓰니까 진짜 예술가 같아요." 분명 하얀색 테를 집을 당시에는 달콤한 말이 진실 같았는데···. 막상 집에 와보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항상 쓰던 스타일을 고를 걸 그랬나?' 머릿속에 물음표가 잔뜩 떠서는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랬던 안경이 점점 손을 타기 시작하니, 마치 원래부터 썼던 냥 익숙한 물건이 됐다.
단발머리를 한 나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브러쉬와 지겨운 씨름을 하면서도 기어코 허리까지 머리를 길렀다. 사투에 백기를 들 무렵에는 결국 단칼에 머리를 잘랐다. 4년 정도이려나, 지지고 볶았던 흔적이 사라지니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왠지 텅 빈 느낌. 이런 기분도 족히 몇 달은 갈 것이라 예상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머리 무게를 체감하니 마음도 그에 맞춰 변화했다. 어느새 단발이 아닌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일종의 규칙이 있다. 한번 꽂힌 음식만 먹는다거나, 아는 노선으로만 간다던가. 이미 증명된 사실 밖에 다른 부분을 보는 게 망설여지는 거다. 모험은 규칙이 깨어지는 순간 찾아온다. 두 갈래의 길 앞에 서 있던 날처럼. 평소라면 오른쪽으로 갔을 텐데 이날의 나는 왼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10분 정도 돌아가는 길. 일찍 집에 들어가기 아쉽다는, 흔치 않은 하루가 만들어낸 선택이었다. 전례 없는 상황을 마주하니 생각 외로 둘러볼 게 많았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야옹" 하품을 시원하게 하는 새끼 고양이. 내가 사랑하는 생물이었다.
예기치 못한 경로에서 맞닥뜨린 햇살. 내가 있든 말든 두 눈을 감고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혹여나 놀랄까 카메라 렌즈를 최대한 당겨 이 모습을 담았다. 조금씩 다가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쓰다듬으니 가만히 있는다. 벌러덩 드러누우며 나를 쳐다봐 주기까지. 영광스러워 그 자리에 족히 30분을 있었더니 마트 문이 딸랑하고 열렸다.
"망덕아~ 망덕이 왔어?"
다정한 목소리로 고양이를 부르는 사장님이었다.
"망덕이 너 웃긴다? 나한테는 엄청 까다롭더니." 맛있는 걸 아무리 갖다 바쳐도 관심 한번 안 주던 고양이라 '배은망덕이'. 귀여운 섭섭함이 들어간 이름이다. 망덕이는 앞 건물 보일러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는 다섯 마리인데, 나머지는 죽고 어미 고양이도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삐쩍 곯아 풀숲에 있던 망덕이를 1년 동안 돌보셨다고. 온갖 할퀸 자국이 가득한 손등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망덕이는 아침 10시만 되면 여기 앉아 있어요. 가게가 그때 오픈하거든요. 그리고 저녁 7시만 되면 홀연히 사라져요. 어디 가서 자는지 모르겠는데, 꼭 시간 되면 가더라고요."
장난감을 갖고 노는 망덕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마치 수도 없이 본 아이같이 망덕이를 쳐다보게 되는 나였다.
망덕이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나그네 생활을 함에도 털이 반짝하고 빛나던 아이. 망덕이는 옛날에 종종 쓰다듬어줬던 고양이를 닮았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댁에 있던 길고양이 '나비'였다.
당시 이모와 이모부는 양촌에서 외할머니를 모시며 배나무 과수원을 운영하셨다. 늦둥이였던 나는 외가 쪽과 깊은 교류가 없었는데, 양촌을 갈 때는 유일하게 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늘 푸근했던 인상의 이모부는 나비를 예뻐하셨다. 마당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나비가 무릎에 올라와 골골댔고, 이모부는 새로 그린 그림을 가져와 설명해 주셨다. 배운 적이 없음에도 어떻게 이렇게 진짜 같은 그림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 어린 나는 감탄했다.
이모부와 나비를 마지막으로 본 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방문이었다. 변함없이 같은 패턴이었는데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큰 자리에 초청받아 전시할 거라고 이야기해 주던 이모부의 인사도.
익숙했던 날이 어색해졌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부모님 입을 통해 건너 건너 들어왔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서는 없었던 일인 듯이 추억 속 서랍에 묻어두게 됐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서는 서랍을 열어 묵혀있던 마음을 꺼내게 됐다. 뭉쳐있던 실타래. 완전히 풀기에는 조금 어려웠던 마음. 어렸다는 이유로 진짜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지 못했던 죄송한 마음.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궁금해진다. 길 위의 나비가 어디에 있을지, 어쩔 수 없는 모험을 받아들였을지. 또 한 번 다른 이에게 햇살이 되어주고 있을지, 햇볕을 만나 새 삶을 누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