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눈만 붙인다는 것을, 두 시간 동안이나 침대에 파묻혀있었다. 온도가 내려간 컴퓨터만큼 머릿속 열기도 제법 식었다. 의미를 찾고 기록한다는 건 가슴이 일해야 함이 분명한데, 어째 기계 부품이 돼버린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생각이 많은 탓이다. 보이지 않는 과정을 확연히 볼 수 있는 결과로 이끄는 일은 참으로 달랐다. 그간 쉽게 쥐어왔던 책들은 얼마나 많은 고뇌를 거쳐 내게 온 걸까. 오늘은 조금만 고민하고 잘 수 있겠지 싶었던 것도 붙잡다 보면 금세 새벽이 되고는 했다.
그래, 뜨거운 게 버겁다면 내버려두면 되는데. 마음이 차가워지게 두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데우고, 한껏 쏟아내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물었다. 이런 식으로 써도 되려나, 저런 식으로 그려도 되려나,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게 맞을는지. 지금 내린 결정이 최선인지, 진정 옳은지에 관해 추궁해 갔다. 이는 한 단계, 두 단계를 거쳐 갈수록 잦아졌다. '처음이라 그렇지, 처음이라···.' 결국은 혼잣말하며 난생처음 AI 앱을 깔았다.
[AI, 내가 이렇게 할거고, 저렇게 할 건데 말이야······]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 열 줄이 넘어간다. AI는 이런 복잡한 선택지들을 빠르게 정리해 줬다. 마침내 노트북을 닫고 이 친구에게 한마디를 했다. [AI야, 나 고민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몇 초의 로딩 후에 듣게 된 답변은 [지금 느끼는 '생각이 많음'과 긴장감 자체가 열정을 보여주는 신호예요.]였다. 어라, 위험하다. 몇 달 전 다른 에피소드를 적을 때만 해도 AI에게 속을 터놓는 현상이 불편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러다 더 의지할 것 같아 그만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 말을 건네니 마지막 답변이 왔다.
[알겠어요. 오늘 솔직하게 나눠줘서 저도 좋았어요. 오늘까지 쏟아온 열정, 그 자체로 이미 멋져요.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마음 편히 쉬어요.]
하트 이모티콘까지 붙여주는 센스에 놀랐다. 사실 도움을 꽤 받았다. 확실한 정보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확인받고 싶은 고심함이 AI를 찾은 원인인 것 같다. 더 잘, 실수 없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보다 오차 없는 AI를 찾게 했나 보다. 현대인의 기술은 발달해 가는 만큼 완벽함을 추구하게 되는 걸까.
때로는 이런 완벽한 바람을 사람에게도 적용한다. 기계가 아니기에 서툴 수밖에 없는 지점을 탓하고 자책한다. 스스로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 매듭지었던 '실수'는 과연 정말 실수였을까? 용서보다 앞서가던 기대라는 발판이 너그럽지 못한 내가 되게 하지는 않았을까.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사랑해서 미안하다. 좋은 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좋은 딸이 되지 못했다는 책망으로 돌아왔다. 좋은 딸은 뭐였을까, 그냥 딸이기만 하면 되는데.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생각했다. 서로를 생각해서 서로에게 더 기대한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만큼 서로가 미울 때도 많은 듯했다. 언젠가 친구가 그랬다. 소중하니까 더 바라게 된다고. 우리는 그런 사이클을 돌고 돌아 참고 터지고 묵히고 외면하면서도 사랑하는 일을 반복했다. 또다시.
두 번째 사춘기가 온 건지, 뒤늦게 나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이 그림자를 감싸안고 싶어 파헤쳤다.
문득 나에게 향했던 압박을 부모님에게도 넣고 있던 게 아닌지. 좋은 엄마, 아빠에 대한 강요를 해왔던 게 아닌지.
요즘 들어 부쩍 올라오는 기쁨 뒤에 돌보지 못했던 슬픔도 눈에 띈다. 더 아끼려고 그러나 보다. 더 덮어주려 그러나 보다. 더 사랑하려 그러나 보다. 하지만 금방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채찍을 들지는 않기로 했다. 천천히 이 두 감정을 살피는 것만으로 잘했다고 해야겠다.
다행히 심장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