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오름직한 동산

by 슬로우소소

"새해맞이로 다 같이 해돋이 보러 갈 예정인데 소소 언니도 가실래요?"


해돋이란 아름다운 풍경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 위한 과정을 쏙 빼먹은 나의 오만함이었다. 오전 7시 40분이 되기 전까지 험난한 산길을 오른다. 그야말로 희로애락의 여정.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노여움과 슬픔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피해를 줄 것 같아 수도 없이 졸여지는 마음이었다.


영하 12도의 날씨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다 보면 어느새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야가 흐릿해질 무렵 퍼뜩 정신을 붙잡았다. 어두웠던 앞길에 빛이 생겼다. 뒤따라오는 이의 핸드폰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빛이 꼭 비탈진 길만 비췄던 건 아니었음을. "다 왔어요! 힘내세요!" 포기할까 싶을 때면 저 앞에서 큰 목소리가 내려왔다. "화이팅! 할 수 있다!" 그러면 저 뒤에서 또 다른 답변이 올라갔다. 누가 내는지 알 수 없는 응원에 한껏 의존하게 되는 새벽이었다.


긴 시간 끝에 첫해를 대면하니 여기저기서 사진을 부탁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디 사는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이 한마디를 나누며 등을 토닥인다. 서로의 행복을 바란다. 토닥여주는 손이 왜 이리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흑연으로 남긴 기록은 유난히 아낀다. 번지는 만큼 세월이 지나간 흔적도 쉽게 남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각별하게 여긴다. 얼마 전에는 이와 닮은 글 친구들을 만났다. 아무 감정 없이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감이 익숙해진 가운데 이들은 더없이 귀했다. 새 연필과 스케치북을 선물해 준 한 명의 글 친구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치북 첫 장을 열어, 또 한 명의 글 친구에게 줄 그림을 남겼다. 겹치고 더해진 선만큼 소중한 이의 행복을 바라게 됐다. 아주 깊이. 이런 마음은 나에게 있어서 선물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나를 위로하게 했다.


주고받는 시간 속에 다정함이 번졌다. 누군가 보여준 선행이 하나의 통로가 되어 내 삶 곳곳에 흘러 들어왔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홀로 우뚝 솟아있는 존재가 아닌, 오름직한 동산이 되고 싶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 한 사람이 나의 동산을 오르며 얻게 되는 기쁨을.


나누는 자가 되고 싶다.



새해의 다이어리는 온통 빈 페이지로 가득하다. 첫 기록은 언제나 나에게 쓰는 편지. 편지를 쓸 자리는 다이어리가 시작되는 맨 앞장이다. 굳이 사용하지 않는 뻑뻑한 페이지에 가지런히 글자를 적어본다. 하지만 분명 이 편지는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남은 페이지를 채우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될 거다. 그러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되돌아온 시작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말하게 되겠지.


여전히 믿고 꿈꾸고 소망해 왔구나. 너를 토닥이는 건 변함없었구나. 살아가다 보니 네가 품어왔던 삶의 자리에 있게 되었구나.


알아차리게 되겠지.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