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
말하는 사람은 나쁜 의도 없이 가볍게 건넸을 뿐인데 듣는 상대방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난 삼아 무심코 던진 가벼운 돌에도 개구리 머리에 맞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듯이.
가장 대표적인 상황이 명절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웃어른이 하시는 말씀이다.
넌 언제쯤 시집갈 생각이니? 짝은 있는 거냐?
좋은데 취직은 했어? (아직 무직인데..)
살 좀 빼야겠구나. 이런 운동 좋다더라...
어른 입장에서는 조카나 손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또는 걱정이 되어 건네는 말씀인 건 잘 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충고나 조언, 걱정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굳이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본인이 뭐가 문제인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여러 사람 모인 자리에서 그런 얘기 꺼내면 듣는 이는 부끄러워 숨고 싶은 심정이 될 수 있고 명절을 점점 싫어하며 회피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고 쓰는 것보다 누군가와 말하고 듣는 걸 더 좋아한다.
아무런 준비과정이 필요 없고 글처럼 공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말은 한번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지만 글은 몇 번이고 고쳐 쓸 수 있다.
말로는 진심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지만 진정성 있게 쓴 글은 마음에 더 와 닿는다.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순간에 본심과는 다른 말이 툭 튀어나와 후회해 본 적 있으리라.
글은 다듬고 또 다듬을 수 있으므로 의도치 않은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말은 내 앞에 상대가 있어야 하지만 글은 혼자서 언제든지 끄적일 수 있다.
또한 말은 입에서 나간 직후 공중으로 흩어지고 말지만 글로 써두면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다 보면 '이 이야기는 이 사람의 말이 끝나면 해야지' 하다가 상대방의 얘기가 끝나도 다시 생각해 내기 어려운 경우를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청와대 회의나 국가 간 정상회담 같은 상황에서는 듣는 이가 발언자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중간중간 메모를 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종종 본다.
발언자가 전하려는 요점이나 자신이 그에 대해 대응할 말을 잊지 않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일반인들의 대화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할 말을 잊어버리는 상황은 없어지겠지만 대화 분위기가 딱딱하고 어색해질 것이라 실행하기 쉽지 않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글 쓰는 게 정말 싫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오늘은 OOO에 대해서 글을 써 보라고 하시면 백지만 하염없이 쳐다보며 도무지 쓸 것이 없어서 고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며 삶의 여러 가지 상황을 겪고 보니 이제는 수시로 글 쓸거리가 넘쳐난다.
한밤에 자다 깼을 때 고요함 속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글감이 떠오를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붙들어 두려면 글로 남기는 수밖에 없다.
음성 녹음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야밤에 홀로 중얼거리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말을 하다 보면 고요함이 깨지면서 생각도 멈추게 된다.
하지만 글자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도 메모장에 키워드만 몇 개 적어두면 날이 밝은 후 제대로 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잠자리에 들기 전 메모지와 연필을 늘 머리맡에 두고 잔다.
요즘엔 꺼진 화면에서도 메모가 되는 스마트폰도 있으므로 어둠 속의 메모에 아주 유용할 것이다.
이런 재미로 심야나 새벽의 어둠과 고요를 즐기고 있다.
말은 말하기와 듣기로 엮이고 글은 읽기와 쓰기로 짝을 이룬다.
말은 소리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므로 목소리 좋은 사람에게 유리하다.
내 목소리는 평범하고 말발도 센 편이 못되어 말에 특화되어 있지는 않다.
반면, 글은 내가 보통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비교우위에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많은 책을 읽어 왔고 수시로 글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을 글로 전달하는 것이 말로 하는 것보다는 훨씬 자신 있는 편이다.
물론 말로 당장 해치우는 것에 비해 글을 쓰느라 많은 시간이 들긴 하지만 내 뜻을 정확히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경험상 말보다는 글이 더 효과적이었다.
말은 상대방이 끝까지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글로 써진 말은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경청'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상대방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글로 써서 보내 놓으면 상대방은 긴 글이라도 결국 다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내가 전하려는 요지를 정확히 전달하여 오해 없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