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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배 Dec 07. 2023

칠십 중반 엄마의 영화관 도전기

키오스크는 무섭지만 영화는 보고 싶어

얼마 전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한편 개봉했다. '3일의 휴가'라는 영화인데 제작은 이미 몇 년 전에 이루어졌지만 개봉이 이제야 되었다고 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니 지방에 있는 엄마 생각이 먼저 났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엄마와 영화를 종종 보곤 했다. 어린 시절엔 엄마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고 사춘기를 지나고 나선 영웅영화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내가 엄마의 영화메이트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함께 영화볼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도 함께 영화볼 상황은 되지 않았지만 왠지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이번 영화를 꼭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영화관을 가본 적 없는, 특히 요즘은 키오스크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영화관을 엄마가 과연 혼자 가겠다고 할까? 이미 칠십 중반이 된 엄마에게 너무 큰 도전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엄마, 영화 한번 볼래? 내가 표를 끊어서 문자로 보내줄게(엄마는 아직 3G폰을 쓰고 있어서 카카오톡 전달하기도 어렵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그 영화관 엄마 찾아갈 줄 알아"


@pexels



드디어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 밝았다. 괜히 내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요즘은 주로 자율입장을 하니 종이표로 바꿀 필요도 없고 괜찮겠지 하는 나의 생각도 잠시. 엄마이름이 뜨고 전화가 울린다.


"여기 영화관 왔는데... 사람들이 뭔가를 막 찍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쩌지?"

아, 거긴 큐알체크를 하고 들어가는 영화관인가 보다. 근처에 있는 직원분을 찾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요. 저희 엄마가 영화를 보러 가셨는데 키오스크 쓰는 게 어려우셔서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고객님. 제가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바쁘고 번거로웠을 CGV 직원분은 나의 걱정을 이미 아는 듯 너무나도 친절하게 응답해 주셨다. 만약 '직접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면 엄마는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좀 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영화 볼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고마워."


낯선 영화관에서 엄마를 도와준 직원분께 너무 고마웠고(CGV 직원분 너무 고마워요 ㅠㅠ), 딸이 실망할까 봐 큰 용기 내어 영화관에 도전한 엄마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던 순간. 그렇게 칠십 중반의 엄마는 오랜만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딸 없이 처음으로 씩씩하게.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빽다방 그 샐러드빵 엄마는 좋아하는데 키오스크 너무 무서워서 못 먹겠더라.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딸이 오면 먹을 수 있잖아"


현금결제하면 직원분께 구매할 수 있으니 무서워하지 말고 사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나도 안다. 아마 내가 엄마 나이가 되었을 무렵엔 또 다른 과학기술의 발달로 나도 누구의 도움 없인 즐거움을 누릴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앞으로는 키오스크 앞에서 도움이 필요한 분이 없나 살펴봐야겠다. 그분 역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일 테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카라멜팝콘은 키오스크 주문이라서 포기하고 영화를 보고 나온 뒤 할리스에 들어가 ‘카.페.모.카’를

사먹었다고(여긴 키오스크 아니었던듯ㅎㅎ) 자랑하는 엄마.

언제나 엄마의 도전을 응원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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