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텍이 Dec 15. 2021

반짝이는 별의 소리

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58호 2021. 9.3. Fri

지난주에 ‘여름 끝자락에서’라는 제목으로 독자님을 만났는데, 이제는 가을의 문턱을 넘은 것 같아요. 매미 소리도 사그라들었고, 아침이나 해가 지는 시간부터는 가디건을 찾게 되었고요. 여름 내내 덮던 얇은 이불이 춥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에어컨 없이는 괴롭던 밤을 산뜻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어요. 산책을 하며 수많은 별을 구경하고,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눈이 가물거리는 기분 좋은 밤을 만나기도 했는데요.


가만 누워 생각해 보니 제가 어느 순간 잠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게 되었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오랜 기간 불면증을 겪었어요. 고민과 걱정이 너무 많았어요. 가장 큰 걱정은 ‘왜 하고 싶은 게 없어졌을까’ 였답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어느 순간 반짝이던 그 마음이 구름 뒤에 가려진 듯 져버렸다는 게 혼란스러웠어요.


안정적인 삶에서 얻어지는 평온함이 좋았지만 동시에 싫었어요. 독자님도 이런 경험하신 적 있으실까요? 좋아했던 내 모습에서 멀어진 나를 바라보며, 씁쓸해지거나 때때로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느껴 보신 적이요. ‘멀어진 내 모습’을 보고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날들을 보냈어요. 자는 게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걱정하지 않는 밤’을 꿈꾸게 되었어요. 모든 것을 잊은 듯한 편안한 밤을 위해서, 자연 소리를 담아낸 공간 음향을 찾고 스트레칭도 꼼꼼히 해보고 따뜻한 차도 마셔보고, 에센셜 오일도 써봤어요. 웃기지만 잠 잘 오라고 토익책도 펴보고요, 양자역학 어쩌고 설명하는 다큐도 끝까지 다 본 적도 있어요.

‘걱정하지 않는 밤’ - 화려한 수식어는 하나도 붙지 않은 듯 간단 명료한 ‘밤’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가능한, 가장 만나기 어려운 밤 같아요. 어쩌다 보니 한산에서 꿈에 그리던 평온한 밤을 맞이하는 날을 만나게 되었어요. 근데, 저 마음에 걸리는 것 있거든요? 마음에 걸리는 게 없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지금도 있는데 걱정과 고민이 없는 듯 밤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 제 마음속에 저를 잠에 들지 못하게 했던 그때 그 고민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곳에 올 땐 처음 도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 삶이 익숙해졌어요. 그러다가 언젠가, 새로운 일 덕에 갑자기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열심히 자료를 찾다가, 문득 ‘내가 뭔가가 하고 싶어졌네’ 하는 순간이 있었어요. 다시 돌아온 이 감각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동안의 무심함과 두려움에 가려졌던 저의 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날을 기점으로 잠들어있던 희망들이 꾸물거리며 제 안에 싹을 틔우고, 덕분에 저는 더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어요. 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어요. 이 마음은 다행히 제 잠을 막지는 않고요. 예전처럼 욕심이 나지 않아 불안하던 마음은 사라졌어요.

이곳엔 제가 찾던 ‘걱정하지 않는 밤’이 있어요. 에센셜 오일 대신 포근한 찐 감자 냄새가 있고요, Asmr 대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공기청정기 대신 촉촉하고 어딘가 특별히 맑게 느껴지는 공기도 있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꾸고 싶은 꿈이 있어요. 별만큼 반짝이는 희망과 작은 행복들이 있어요. 평온한 밤을 기꺼이 만들어준 한산 안에, 제가 있어요.


언제가 봤던 소설,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한 단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여름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 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 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산책을 하며 먹구름을 걷어낸 한산 밤하늘에 수놓은 별들을 보았어요. 그 빛나는 별들 사이로, 별처럼 반짝이는 희망들을 보았어요. 이 밤 하늘을 보기 위해 뛰어든 풍경에, 수많은 풀벌레 소리들이 들리고 이 소리가 마치 한산의 별들이 내는 소리처럼, 반짝이는 제 안의 소리처럼 들렸어요.

무진기행의 주인공이 잠시 쉬기 위해 무진에 간 것처럼, 저는 한산에서 저만의 한산 기행을 쓰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온 적 없던 이곳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반짝이는 마음들을 느끼고 있어요. 독자님의 요즈음은 어떠신가요? 선선한 밤공기를 즐기고 계실까요? 독자님의 마음 한켠에도, 풀벌레가 우는 것 같이 맑고 반짝이는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희망이 지금 안 보일지라도, 언젠가 구름이 걷어지면 그 누구보다도 반짝일 마음을 발견하실 거라 믿고 있어요. 독자님의 빛나는 마음을 위해, 한산에서 응원하고 있을게요. 괜히 보내기 아쉬운, 산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매일을 만끽하시길, 이 계절이 독자님의 안온한 날들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 반짝이는 마음을 담아 한산에서 YON


우리는 모두 별로 이루어져 있다: 사샤 세이건의 "Lessons of Immortality and Mortality From My Father, Carl Sagan" (2014)


칼 세이건은 미국의 천문학자로 <코스모스>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천체 생태계를 알렸는데요. 코스모스가 더욱 주목받는 점은, 칼 세이건이 우주를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태도를 제시했기 때문이에요.      


Tvn의 2020년 예능 ‘책 읽어드립니다’에 설민석 강사가 직접 코스모스를 소개하며, 얼마간 다시 재조명되면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은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과학을 통한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얼마 전엔 이 가족의 철학을 녹아들은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라는 사샤 세이건의 에세이집이 발간되기도 했어요.


사샤 세이건이 2014년에 new York 매거진에 기고한 ‘lessons of immortality and mortality from my father, carl sagan’ (원제) 우리말 번역으로는 ‘나의 아버지 칼 세이건으로부터 배운 불멸과 죽음에 관한 교훈’을 소개하려 해요.


우리 모두를 별에 빗댄 칼 세이건, 사샤 세이건의 문장을 통해 그의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가 전해집니다. 밑에 버튼을 클릭하셔서 전문을 읽어보세요. (사진 출처 : Hristo Fidanov 님의 사진, 출처: Pexels)

/

칼럼 일부를 살짝 보실까요? 


어린 내가 존재의 두려움에 빠지려 할 때마다 부모님은 내게 그들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너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단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한 사람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운명의 갈림길이 있는지 이야기했고, 내가 지금 바로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시고, 가까운 별이 내는 따스한 온기를 즐길 수 있게 진화했다는 사실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유전자를 통해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더 멀리는 우주, 곧 내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는 항성들의 핵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유명한 말인 ‘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We are star stuff)’는 말을 내가 어린 시절부터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우리가 깊이 감사해야 할 이유이며, 이것이 우리에게 심오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존재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칼럼 원문

칼럼 해석 기사


별을 세며 읽는 시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한국의 대표 시인, 윤동주의 시집입니다. 나라의 독립에 대한 고뇌, 삶의 고뇌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에 담아낸 것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이에요.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나 시험에 왕왕 나왔고, 특히 별 헤는 밤은 어렸을 때 열심히 즐겨하던 ‘한컴타자연습’(ㅋㅋ)에서도 많이 봐서 너무나도 익숙해요.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유명 작품이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 시인 생전 출판되지 못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의 지인들이 엮어 만든 책이라고 해요. 윤동주 시인의 작품엔 ‘밤과 별’이 정말 많이 등장하는데요. 고뇌하고, 그리워하는 밤을 그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뉴스레터 키워드 ‘별’을 떠올렸을 때 윤동주 시인이 먼저 생각이 났어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 윤동주


이번 주말엔, 이렇게 밤하늘을 보며 별을 읽는 시 한편 어떠세요?


Lost stars들의 영화 비긴어게인 (원제 begin again, 2013)

줄거리
싱어송라이터 그레타는, 남자친구 데이브가 메이저 음반회사에 계약하게 되면서 뉴욕으로 가게 됩니다. 언제나 음악적인 공감을 주고 받던 둘 사이는 데이브가 다른 상대를 만나면서 깨지게 되는데요. 이런 그레타의 음악을 우연히 들은, 왕년에 잘나가던 음반 프로듀서 댄. 댄은 그레타와 함께 뉴욕의 길거리를 그대로 입힌, 앨범을 만들어냅니다.


완성된 앨범을 들고 찾아간 음반사에서, 회사와 가족으로부터 외면 당하던 댄과 대중과 맞지 않는다며 퇴짜맞던 그레타는 ‘이번 앨범은 환상적’이라는 평을 듣죠. 데이브는 그레타를 다시 찾게 되었고, 그레타가 그에게 선물한 ‘lost stars’라는 곡을 편곡해 들려주지만, 그레타는 데이브와 만나지 않는 것을 선택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전, 그레타는 댄과의 앨범 계약을 돌연 포기하고, 그레타의 앨범은 단 돈 1달러에 인터넷에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하룻밤 새에 1만건이 다운로드 되며, 그레타의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고 영화는 마무리되어요.



OST - Lost Stars 에 대하여
2014년 한국에서 엄청나게 흥행했던 ‘비긴어게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흥행이 저조했지만, 유일하게 한국에서 영화와 OST 모두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 영화의 대표 OST ‘Lost Stars’로 표현되는 영화와, 그 Lost Stars안에서 우리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소개하고 싶었어요.



Lost Stars 의 가사를 보시면, 처음엔 이해가 잘 가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슬픈 느낌이 들었어요.

찾아보니 작사가 Gregg Alexder는 삶에 대해 노래하는 일부러 가사 하나하나에 삶에 대해 고민하는 젊음들의 압축적인 이미지를 담았대요. 반대로 멜로디는 잔잔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도록 빚어냈고요.


해석

Yesterday I saw a lion kiss a deer 

어제 사자가 사슴에게 입맞추는 걸 봤어요.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지 않는 보통의 장면을 본 것 처럼, 혼돈과 부정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에도 좋은 일은 있어요. 그러니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요)  

              

Turn the page maybe well find a brand new ending 
페이지를 넘기면 새로운 결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조금만 스스로를 지지해주세요, 그렇다면 당신만의 길을 찾게되고, 목표를 따낼거에요)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신이시여, 왜 청춘이 젊을 때 낭비 되는지 말해주세요. 

(왜 우리는 우리의 청춘을 즐기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인생이라는 경주를 즐기는 것을 잊을까요?)


it's hunting season and this lamb is on the run searching for meaning

지금은 사냥 시즌이고, 양들은 의미를 찾아서 도망다녀요.

(세상은 잔인하고, 도전적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목표 / 우리의 목표 / 우리 세상 존재의 이유를 찾는 양이고, 희생자고, 갈망하는자들이죠.)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우리는 모두 어둠을 밝히려는 길 잃은 별들인가요?

(우리 각자는 큰 우주속 작은 별 하나이지만, 이 세계에 목적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열정을 찾고 있어요. 우리 각자는 꿈을 실현하고 이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있어요)



덧붙이며..

오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지만, 뒤돌아 봤을 때 지난 젊은 날들이 낭비 된 것 같아 속이 상할 때도 있지요. 그런데 별이 열심히 반짝이는 것처럼 우리 나름대로 그 때엔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주세요. 어쩌면 젊은날을 젊은날이라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청춘이 온전히 청춘으로써 존재하는 걸 수도 있다 생각해요.


가끔 찾아오는 좌절도 결국엔 반짝이는 한 순간이라고, 각자 이렇게 빛나는 삶을 노래하기 위해 ‘길 잃은 별’이라는 제목의 ‘Lost Stars’가 태어난 것 같아요. 그 노래에 담긴 의미가 104분에 걸쳐 그레타와 댄을 통해 그려지는데요. 음악으로 수놓아지는 그레타와 댄의 begin agian을 감상해보세요.


매일 매일을 쌓아가며 만드는 천체사진 :  좋아서 하는 밴드 - 천체사진

조리개를 열고 밤하늘을 한참 찍으면, 별들이 움직인 자리가 그려지면서 ‘천체사진’이 되어요. 

그 천체사진 처럼,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언젠가 아름다운 사진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반짝이겠다는 마음을 담은 곡인데요.


오늘 소개한 것들은 유독 2013, 2014년 즈음에 머물러있네요. 2013년에 전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여기서 소개한 음악들을 들으며 열심히 수험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땐 매일매일이 지치고 때론 의미없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가사처럼 그런 날 조차 켜켜이 쌓여 오늘의 제가 되었네요. 저만의 천체사진을 찍어냈고, 지금도 계속해서 찍고있습니다. 독자님은 독자님만의 천체사진을 갖고 계시겠죠? 


빛나는 매일이 사진에 새겨져 있길 바랍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 사랑을 담아 삶기술학교 YON


편지를 보낸 삶기술학교 둘러보기


작가의 이전글 여름 끝자락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