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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텍이 Dec 15. 2021

여름 끝자락에서

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57호 2021. 8.27. Fri

오늘의 BGM (클릭)

이번 주 월요일은 ‘처서’였어요.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절기인데요. 정말로 요 며칠 새에 비가 쏟아지더니 더위가 한 풀 꺾였어요. 한산은 이제 여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여름을 돌아보게 됐어요. 이번 여름은 독자님에게 어떤 여름이었나요?


이번 여름엔, 예전의 여름이 그리워지기도 했어요. 마스크 때문인지 어쩐지 특히 더웠던 것 같기도 하고요. 밖에 나가기만 해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것만으로도 싫었는데, 마스크 사이의 작은 공간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또 방학이란 단어가 없어서 뭔가 부족한 느낌도 들어요. 여전히 여름 하면 방학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런데 학교를 모두 졸업해서 방학이란 공식적인 기간이 제 삶에서 없어졌어요. 늘 방학 시작 전, 선생님부터 교수님까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외우시던 “방학은 노는 게 아니다”라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게 섭섭한 날이 올 줄이야..

여러모로 성에 차지 않는 여름인 것 같은데도, 간다고 하니 아쉬워요. 코로나와 싸우는 2021년 여름은 어쩌면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될 수도 있는데도요. 여름을 원래 좋아한 것도 아니에요. 사계절 중 1위를 꼽으라 한다면 늘 여름은 뒤로 밀렸고 심지어 ‘여름 싫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올해처럼 여름이 간다고 하면, 미운 정 든 친구 보내는 것처럼 서운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왜 여름이 가는 게 아쉬운지 생각해 보면, 여름만이 가진 이미지를 내년이 되어서야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서 그런 것 같아요. 초록, 자유, 에너지 같은 것들이요. 그런 이미지들이 멀어지는 걸 보면서 한 해의 절반이 훌쩍 넘었다는 걸 직감하며,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싶어지는 그런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저처럼 무섭게 더운 여름이 끝나는 것을 반기는 마음과 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섞인 복잡 오묘한 순간을 느껴보신 적 있으실까요? 아마 이 순간이 지나고 낙엽과 눈으로 메워지는 고요한 계절이 다가오면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는 게 더 다가오며 그 감정은 배가 될 것 같아요. 물론 내년이라는 새로운 페이지 위에 멋진 그림을 그릴 기대감으로 무마될지도 모르지만요.

이 시기는 온갖 생명들의 아우성치며 치솟는 온도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에, 시원한 물을 끼얹듯 소리가 사그라드는 ‘계절이 얼굴을 바꾸는 때’예요. 의식하지 않더라도 계절이 바뀌는 매일을 살결로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변화에 맞춰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되죠.


저는 늘 가을을 앞두고 계절이 마련해 준 틈 사이에 서서 뒤를 돌아보며 후회만 했던 것 같아요. 각자의 성격이 어떤지에 따라서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매년 주변 친구들에게서 듣는 말은 ‘뭐 했다고 벌써 가을이냐’는 말이었어요. 다들 저랑 비슷한 마음의 결 한 면이 있는 거겠죠.


그런 후회를 발판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단번에 안되고, 때로는 스스로에게 미운 한 마디를 던지게 되기도 해요. 지난 계절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과적으로 보이는 게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을 거예요.

언젠가 본 만화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어요. 그 작가님은 to do list를 쓰지 않는데요. 분명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다 안 지켜버린 to do list를 보면 기운이 쪽 빠진다는 거예요. 부작용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자기는 done 리스트를 쓴대요. 이미 해버린 것들의 목록을 쭉 쓰다 보면 그냥 해버린 일들도 리스트에 있으니 다 칭찬할 수 있어서 좋대요.


Done list 라니! 단어를 보자마자 입꼬리가 쑥 올라가던걸요. 목표는 원대하게 세우는 게 좋다지만, 늘 그걸 따라가는 데에 지쳤던 게 생각이 났어요. to do list처럼 ‘했음’에 눈길을 두지 못하고 ‘안 했음’의 빈칸으로 속을 쓰리게 하던, 번번이 내게 고통을 안기던 도구를 잠시 내려놓을 기회를 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쯤에서 저를 질책하는 것은 잠시 내려두고, ‘내가 무얼 했나’를 생각해 보기로 했답니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done 리스트를 쓰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전 이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기를 보기, 친구랑 대화한 기록을 보기, 얼마나 많은 책을 샀나 보기, 얼마나 많은 필름을 썼나 보기-


Done list를 쓰려 들여다본 지난 기록을 보니, 허비했다고 생각한 어느 날마저 고민을 했었고, 허둥지둥 흘러간 어느 날에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거예요. 그런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신기하게도 제 태도가 바뀐 것들이 있어 놀랐어요. 이런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덜 자책하고, 덜 후회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후회니까 접어두려고 합니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이 시기엔, 우리도 ‘한-‘이라는 단어가 붙는 그 시기 (한봄 한여름 한가을 한겨울)에 열심히 달렸으니 잠깐 서서 뒤돌아보는 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저처럼 걸어오신 올해의 절반을 정리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독자님의 소중했던 순간을 확인하게 되고,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사실 얼마 남지 않은 이 계절을 더 만끽하는 것도 좋아요.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싱그러움을 작정하고 느껴봐요. 샤워하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캔 음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살짝 시원해진 밤에 들을 수 있는 풀벌레 소리, 깊고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바다 냄새, 따뜻한 모래와 적당히 시원한 파도, 아삭아삭한 수박.


남은 여름을 기대하며 to do list를 작성하셔도 좋을거에요. 뭐든지, 독자님의 선택이 독자님의 하루를 더욱 반짝이게 비춰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지낸 하루가 오늘 독자님이 잠들기 전 하루를 생각할 때 지나왔던 여름만큼이나 눈부셨으면 해요.


다음 뉴스레터를 보낼 때에는 레터 맨 윗줄에 9월이란 숫자가 찍혀 있겠죠? 개인적으로 저 YON이 뉴스레터로 독자님을 만나게 된 것이 한여름이라, 이번 여름은 잊지 못할 날들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오늘도 독자님의 안온한 날들을 바라며, 다음 주에 뵐게요!



- 여름의 끝자락에서, 삶기술학교 YON


 소개하고 싶은 것들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함께하는 '이 계절의 맛 일오백'



이 계절을 그리는 달콤한 술 일오백으로


가족들과 같이하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선물해보세요.



뉴스레터가 발행되는 이곳, 한산에는 오랜 전통을 이어온 소곡주라는 술이 있어요.서천 지역의 쌀과 맑은 물, 그리고 야국과 메주 등을 이용해 만든 술인데요.


알코올 향 나면 입도 못 대는 술알못 YON도 너무나 맛있게 먹는 이 달콤한 술은, 누구나 좋아할 맛이라고 장담해요.


유리컵에 얼음을 넣고, 토닉 워터 반, 소곡주 반을 섞어 드셔보세요. 레몬, 라임을 넣거나 오이를 넣어보세요. 같이 페퍼민트를 같이 넣어도 좋아요!


식사가 끝난 저녁, 샤워 후에 가족들과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선풍기 켜고 간단하지만 맛있는 칵테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카카오톡에서 일오백을 만나보세요. 


여름의 맛 - 복숭아 바닐라 조림

여름의 과일 복숭아, 이제 끝물이에요. 지금 보는 복숭아는 물 탄 맛이 나지만, 내년까지 못 본다 생각하니 이대로 떠나보내기 힘든 마음이 들 때도 있죠. 아쉬운 맛이 나는 복숭아 몇 알에 시간을 조금 들여서 더 진한 ‘여름의 맛’을 느껴보세요.


1. 복숭아는 씨를 빼낸다

2. 냄비에 꿀과 설탕 물과 바닐라빈을 넣고, 10분 정도 끓인다.

3. 브랜디를 넣어서 다시 조린다 (생략 가능)

4. 조린 복숭아를 식힌 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담아 먹는다


여름 숲을 내 세계로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줄거리

건축학과를 막 졸업한 주인공(사카니시 도오루), 존경하는 건축가 ‘무라이 선생님의 건축사무소’는 몇 년째 신입을 받고 있지 않지만 주인공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졸업 작품과 이력서를 제출해요. 곧이어 채용이 결정되는데요.


주인공은, 무라이 사무소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매해 여름 한 철 묵는 ‘가루이자와’라는 산간 지역의 고급 별장에 들어가 여름 합숙을 시작해요. 그리고 그곳에서 ‘국립 현대 도서관’ 경합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요.


YON의 추천

언젠가 이 책을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인생에서 앞으로 책 한 권만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은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입니다. 그동안 소개를 미루었던 이유는, 제삶지대에서 ‘여름’을 이야기할 때 소개를 하고 싶어서 였어요.


작가의 무심한 듯한 말투에 세밀한 묘사들로 이루어진 문장과 페이지를 가로지르며 책을 읽다 보면, 숲의 풍경이 보여요. 연필을 깎는 촉감, 연필심과 나무에서 느껴지는 냄새도 느껴져요. 가끔 묘사하는 새소리나 클래식을 찾아가며 듣다 보면 더욱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져요.


또 책의 정수는 ‘건축 이야기’인데요. 작가가 건축에 굉장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마음이 이 작품에서 녹아 들었다는 것이 매 장마다 느껴집니다.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건물이 눈앞에 그려지고 주인공의 안내에 따라 그 공간들을 둘러보다 책을 덮는 순간, 작가의 건축을 향한 마음이 나에게 물들었나 보다 –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건축을 그저 내가 담긴 어떤 큰 물체가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람의 정신을 담아내는 공학과 예술 그 사이의 것이라는 인식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원래 ‘화산 기슭에서’라는 제목이에요. 그런데 이 책을 한국으로 들여올 때, 담당 역자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해요. 저는 이 제목이 이 내용의 전부를 다 포함한다고 해도 무방한, 더 나아가서 읽는 독자가 책 속 세계를 품게 하는 데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책 한 권으로 짙은 녹음과 촉촉하면서 시원한 공기를 가득 머금은 숲에 다녀와보세요. 독자의 마음속에,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살게 될 거예요.


책 속의 문장들


“인간이 처음 본 평평한 것, 바람 없는 날의 호수. 파도가 쓸고 간 모래사장, 얼어붙은 물웅덩이, 내 청바지와 티셔츠에는 주름이 가고, 풀이랑 잎사귀의 초록색 파편이 달라붙어있다. 예초기 엔진을 끄고 헬멧을 벗는다. 숲의 소리가 귀에 돌아온다.”  


“신앙을 갖지 않은 건축가가 그 경험과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교회에는 기도와도 같은 것이 형태가 되어 나타나 있었다. 그 형태는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을 내부로부터 진정시키고, 혹은 격려하고 움직일 것이다”


 꿈에 그리는 여름방학 : TVN 예능 프로그램 '여름방학'

2020년 TVN에서 진행했던 정유미, 최우식 출연의 TV 예능 ‘여름방학’입니다. 정유미와 최우식이 한 달간, 강원도 고성에서 살며 ‘여름방학’을 보내는 내용이에요. 내용은 사실 거창하진 않습니다. 한 달간 빌린 강원도 고성의 어떤 집에서, 밥해 먹고 운동하고 일기 쓰고, 텃밭도 가꿔보고 친구도 종종 초대하는 그런 얘기요.


내용이 거창하진 않은데, 우리도 당장 이렇게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기도 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나 바라는 한 달. 성인이 다 되어서 즐기고픈 ‘방학’을 보내며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둘의 일상을 보며, 방송이 진행됐던 매주 금요일은 늘 즐거웠어요.


올해의 정유미와 최우식의 ‘여름방학’은 없지만, 여름을 잘 담아낸 예능을 다시 돌려보기 하면서- 남은 여름을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떠실까요?


Tricolor 의 natsuno owari

Tricolor - natsuno owari


아일랜드 전통 음악을 하는 일본 밴드 tricolor의 natsuno owari입니다.

夏の終わり ‘여름의 끝’이라는 뜻이에요.


듣다 보면 늦여름, 해 질 녘 놀이터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장면이 저절로 떠오르고

왠지 피아노 학원 끝나고 집 가서 투니버스 틀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요.


잔잔한 어느 여름날의 한 장면 처럼,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 되길 바랍니다.


이번 여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독자님, 다음 주에 뵐게요


- 사랑을 담아 삶기술학교 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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