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56호 2021. 8.20. Fri
독자님은 독자님만의 작은 평화를 갖고 계시나요? 저는 약 한 달 반 전부터 삶기술학교가 있는 이곳 한산에서 살며, 작은 평화들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저의 새롭고 작은 평화가 있는 이곳은, 충청남도의 서남쪽 끝 서천이란 곳에 있는데요. 주변에 산이 있고, 차로 20분간 달려도 끝없이 보이는 논과 밭이 있는 곳이에요.
변화를 갈망할 때 삶기술학교에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성장하기 위해 한산에 온 것이지만- 첫 시골이라 그런지 한산에서는 노력하지 않아도 나만의 평화를 갖게 될 거라 기대했나 봐요. 그렇지만 대게 일이 그렇듯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더라고요. 새로운 걸 배우려고 왔으니, 각오도 했었고 충분히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독자님도 저와 같은 과정을 겪었거나, 겪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모든 과정에선 감정이 생기잖아요? 그 감정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잘 되지 않죠. 처음부터 만능으로 다룰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날은 마치, 내가 어디서 행복을 얻었는지를 잠깐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 않나요? 평화라는 단어가 멀어 보이고요. 언젠가 다시 그날을 떠올려보면서 ‘아 그럴 필요 없었는데’라며 되뇔지라도, 겪을 당시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싶어 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음을 한층 더 들여다보면, 모든 걸 뒤로하는 것보다 독자님이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그랬거든요. 모든 걸 뒤로 하는 게 아닌, ‘가뿐한 마음’을 원했어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숨 쉴 수 있는 잠깐의 틈을 찾는 거 였어요. 부담이 나를 채워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금방 그 마음을 비울 줄 아는 능력이 삶에 필요했어요.
저도 작은 평화를 찾고 싶었지만 감정을 무시하려 했던 날이 있었어요. 몰라서 그랬던 거예요. 자면 다 해결될 것 같다고, 제 평화를 ‘잠’에게 모두 맡겼지요. 그러다가 저를 찾아온 작은 평화를 만나게 됐는데요. 평화를 만난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갖고 있던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거예요. 한참을 누워서 의미 없이 핸드폰을 보다가 공기가 답답한 것 같아서 손만 뻗어 창문을 열었어요.
그 순간 새벽 공기만이 가지는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맨발에 닿았어요.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영화에서만 들을 수 있을만한 새소리가 노래처럼 울리더라고요. 꽉 찬 머릿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한바탕 씻어내는 것 같았어요. 그리곤 방 천장을 가만히 봤는데,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보였어요. 코 끝으로는 약간 젖은 흙과 풀 냄새가 흘러 들어오는 그 순간이 머릿속에 깊게 박혔어요.
어제는 삶기술학교의 ‘한산한 오늘’ 뒤에 있는 길로 산책을 갔어요. 매일 보던 풍경이고 별다를 것 없었는데 그날따라 달이 무척 크고 밝았어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하늘을 봤는데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지나가는 밤 비행기 다섯 대를 눈으로 좇고 별을 세며 약간 수분을 머금은 선선한 공기를 두 팔로 가르며 가는 그 시간을 잊을 수 없게 됐어요.
새벽 공기를 만났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잠깐의 틈을 찾은 그 10분을 잊을 수 없어요. 인생 마지막까지 내 삶의 액자에 넣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순간들을 두 눈으로 찍어두며, 처음으로 평화라는 건 언제나 내 주변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특별한 뭔가를 한 게 아니잖아요? 알고 보면 언제나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인 것뿐이에요. 나뭇잎이 사글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숨을 들이켤 때 코 주변의 시원한 공기를 느꼈고, 풀 내음을 맡았고,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본 것뿐이었는데요.
그동안은 가진 고민의 무게만큼, 고민의 복잡함만큼 대단한 무언가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나봐요. 그런데 단지 그 10분으로 내 하루 삶이 바뀌었어요. 마치 엉킨 신발 끈을 풀 때엔 아주 작은 틈을 비집는 가벼운 손짓에서 시작하듯, 우리의 감정도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데에서 풀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 고개를 돌려 주변에 늘 있던 것들에 눈을 맞추는 순간 그것들이 내 안의 작은 평화가 된다 생각해요. 아주 잠깐 눈을 떼고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들어 보는 것, 내게 아주 잠깐의 틈을 주는 것. 꼭 대상이 자연이 아닐지라도, 내 곁엔 언제든 평화가 있다는 걸 안다는 것, 더 나아가 그 평화를 찾아 내 안의 여행을 나서는 것. 저는 이것들이 삶에 꼭 필요한 기술 ‘삶기술’이라고 생각해요.
평화라는 게 매일매일 치열한 삶에선 너무나도 이상적인 단어 같고, 본인과 먼 단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앞으로 계속 안고 나갈 작은 평화를 이곳에서 발견한 것처럼, 각자 저마다의 평화를 만나는 날이 있겠죠. 아주 큰 것이 아니더라도, 작고 작은 평화를 삶의 구석구석 넣어두고 숨 고를 영역을 만들어둔다면 전보다 조금은 의연한 마음으로 가뿐한 삶을 걷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도 삶기술학교에서 원하는 곳을 향해 달리며 걷고 있어요. 이 여정에서 가끔 주변을 돌아보며 숨을 고르는 ‘나만의 평화’도 찾고 있지요.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삶기술을 만드는 과정일 거예요. 저와 독자님은 다른 곳에서 살며 다른 일을 하겠지만, 독자님만의 삶기술로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자기만의 작은 평화’들을 안아보셨으면 해요.
자기만의 평화가 없다고 해도, 있다고 해도 잠시 시간을 내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주변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봐 주세요. 바로 옆에 작은 평화가 오늘 독자님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지도요!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삶기술학교의 뉴스레터가 독자의 작은 평화가 된다면 너무나도 좋겠습니다. 독자님의 안온한 날들을 빌며, 다음 주에 뵐게요
- 여러분을 응원하는 삶기술학교 YON
소개하고 싶은 것들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
‘작은 평화’ 일오백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 ‘작은 평화’를 선물해보세요.
정성과 사랑으로 소중한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을 이어주는
마음의 언어법 일오백 �
뉴스레터가 발행되는 이곳, 삶기술학교가 있는 한산에는 소곡주는라는 긴 역사를 지닌 이 지역의 깨끗한 물과 쌀, 국화와 누룩, 그리고 정성을 넣어 만든 꽃을 품은 달콤한 술이 있어요.
우리는 일오백이라는 이름으로 그 정성을 잇고 있어요.
지금 그 정성이 담긴 일오백을
카카오톡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한 모금의 작은 평화를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떠세요?
손바닥 안의 평화 - 어플리케이션 ‘시요일’
가끔은 문장만이 만질 수 있는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땐 긴 산문도 좋지만 시만이 가진 짧은 호흡과 짙은 여운으로 마음을 매만져보는 것도 좋아요.
그런 날이 찾아오는 언젠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을 추천해드릴게요. 시요일은 출판사 ‘창비’에서 운영하는 ‘시’ 구독 서비스에요.
시요일에서 매일 추천하는 ‘오늘의 시’를 보며 하루를 열고, 테마별 추천 시로 그때그때 읽고 싶은 내용의 시를 찾아보세요.작가별, 감정별, 키워드별.. 머릿속에 단어가 떠오르면 언제든 검색해보세요.
수많은 시인들이 내가 생각한 단어를 떠올리며 각자만의 언어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한 것 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그렇게 만난 시 하나가 읽는 이의 마음을 물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테마별 추천시에서 YON만의 추천 테마를 꼽는다면 ‘삶의 한 권의 책이라면’ 그리고 ‘하염없이 걷고 싶어지는 날에’에요. 주중을 마무리하는 오늘 시 한 편, 권하고싶어요
모니터 속 평화 - 유튜브 추천
책을 읽거나, 업무를 볼 때 화면이나 소리의 공백이 공백인 채로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색다른 소리와 장면으로 채워보세요. 제가 늘 찾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드릴게요.
유튜브 채널 | traditional technology
전통기술과 한국 곳곳 숨겨져 있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평화를 담아낸 채널이에요. 어떤 과한 효과나 음악 없이 모시짜기, 구기자주 만들기 같은 가까이서 보기 힘든 우리의 것만으로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는 영상들을 경험해보세요.
유튜브 채널 | 4k relaxtation channel.
채널명에 걸맞게 전 세계 곳곳에 평화로운 장면과 소리를 담아낸 영상을 업로드합니다. 산 길이나 호숫가를 산책하는 영상도 있고, 한 장면을 오랫동안 찍어둔 asmr 영상도 있어요.
유튜브 채널 | lorirocks777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만을 올리는 유튜브입니다. 겨울이 배경인 책을 읽을 때,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보던 영상이에요. 수없이 펼쳐진 백색 세상과, 기차가 울리는 소리에 빠져보세요.
'한 접시의 평화 :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오랜 기간 식당을 운영해온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아키코. 그리고 출판사에 근무하던 아키코에게도 부서 이동 권고가 들어옵니다. 아키코는 취미로 하던 요리를 업으로 삼기로, 엄마의 식당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어요.
아키코 집 앞의 찻집 사장님과 직원, 그리고 아키코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과 함께 지내는 일상. 아키코와 직원이 정성 들여 운영하는 식당. 아키코의 ‘샌드위치와 수프’라는 간단해 보이는 식사를 하고 위안을 받는 손님과, 그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받는 아키코.
아키코가 정성으로 만들어낸 ‘한 그릇의 평화’로 모두가 이어지는 이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음악 - Liz story 의 peace piece (앨범 solid colors 중에서)
Liz story의 앨범 'Solid colors'에 있는 곡 'peace piece'입니다.
빌 에반스의 peace piece (1958)를 liz story 의 감각대로 편곡 한 버전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liz story의 편곡 버전이 더 와닿아서
원곡보다도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제목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평화 조각'일까요? 멋진 말인 것 같아요.
여러분의 삶 곳곳에 '평화의 조각들'이 반짝이기를 바라며-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독자님의 평화를 바라며, 삶기술학교 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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