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진지했던 1년 차 직장인

by slowind

기자 생활을 한 지 햇수로 8년째. 새해를 맞아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하던 중 손 때 묻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짧은 메모 하나가 휘갈겨 적혀 있었다. 제목은 '선을 지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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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씨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열 명의 기자들이 계단에 앉아 oo씨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여전히 기별은 없다. oo씨 앞집에 사는 이웃은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죄송하다며 머리를 연거푸 숙일뿐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취재의 선(線)'을 지키라는 것. '선'이라는 건 무척 추상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선배는 그 선이 무엇인지 구체적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취재현장에서 마주하는 취재원과 기자의 '선'은 늘 어긋난다.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선을 취재원의 '인권'이라는 범주 안에 주욱 그어버린다. 그 순간 충돌이 벌어진다.


oo씨는 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깨뜨린 사람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oo씨를 비난한다. 그래서 나는 oo씨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그의 집 앞에 일주일째 앉아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내가 버티고 있는 이곳은 oo씨의 집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보금자리다. 가족들은 집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거나, 혹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한 채 낯선 곳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한 무리의 기자들은 한 가족의 인권을 뭉게 버렸다.


나는 여전히 우두커니 앉아 있고 oo씨에게선 그 어떤 대답도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알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나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법을 어긴 범죄자라 해서 그의 인권은 무시돼도 되는 것일까. 취재의 선이라는 건 어디에 그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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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휘갈겨 쓴 메모를 바라보며 지금 나는 너무 많은 것에 무뎌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지켜냈고, 또 무엇을 저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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