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기억했다

요즘 친구들과 모이면

우리는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한다.


아기 낳으면서

기억력도 같이 낳아버린 것 같다고.


각자 하나씩

황당한 기억 상실 에피소드를 꺼내놓는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인데,

웃다가도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최근에

집 비밀번호를 깜빡했다.


오래 쓰던 번호를 바꾼 뒤였는데

새 비밀번호가 휴대폰 비밀번호랑 비슷해서

자꾸 엉뚱하게 누르곤 했다.


그러다 결국,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을 부르려고

전화기를 집어 들던 그 순간,

문 손잡이를 잡은 내 손이

아무렇지 않게 번호를 눌렀고

문이 열렸다.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한동안 문 앞에 서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럴 수도 있나.

스스로에게 적잖이 놀랐다.


아기를 업고

아기를 찾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요즘의 나는

기억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보다 습관이 앞선다.


그래서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어버린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서.





오늘의 단어 <건망증>

기억력이 나빠진 상태라기보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역할과 하루가

겹쳐 쌓여 생기는 작은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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