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권태기 이겨내기
그건 먼지일 뿐, 내가 아니니까
심리학에 말하는 자기 관찰이라는 걸 시작했다.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살피고, 이상한 습관이나 특정한 패턴이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일부러 초조한 기분을 억누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자세히 보니 나는 권태로워질 때마다 불안하거나 초조했다. 나와의 권태를 느낄 땐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다행히 난 사소한 해법들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그게 두려움이던, 지루함이던,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때 이런 일들을 하면 괜찮아지더라는 데이터를 쌓아뒀다.
카페로 향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필요한 예산은 오천 원 남짓. 오 분만 걸으면 꽤 괜찮은 카페가 나온다. 집안과 확연히 다른 조명, 직접 관리하려면 아찔하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예쁜 실내 장식, 무엇보다 낯설지만 취향에 맞는 노래와 고소한 커피 향이 그곳에 있다. 글을 쓰려고 한참 동안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도 빳빳하고 이상한 문장만 떠올라 답답했던 적이 있다. 이럴 바엔 그냥 기분전환이나 하자 싶어서 집 앞 카페로 갔다. 큰 창 너머로 교차로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눈 앞에 다른 풍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뇌에 긍정적인 자극이 되는 게 분명하다. 유연한 문장이 곧잘 튀어나왔다. 그렇게 짧은 슬럼프를 극복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영 기운이 없어 밖으로 나가기 싫을 땐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한다. 마음이 무거울 땐 몸도 차갑게 굳는 듯하다. 몸의 온도가 오르면 기분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후드득 비처럼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릿속 복잡한 잡념 대부분이 사라진다. 당장 중요한 생각만 남는다. 밥을 먹어야겠다, 집을 치워야겠다, 글을 써야겠다 같이 단순 명료한 것들. 그럼 그 마음에 따라 무언가를 시작하고 남은 하루를 풀어가면 된다. 그렇게 하루를 잘 넘기고 다음 날이 되면 권태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을 때가 많다. 하루를 잘 넘기는 것이 항상 중요하다.
매일 산책하지 않으면 유죄라고 생각될 만큼 완벽한 산책로가 오 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나가진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나 되려나. 낮에는 바빠서, 저녁엔 춥고 어두워서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 집이 감옥처럼 갑갑하게 느껴지면 그제야 걸음을 옮긴다. 자연은 그렇다. 언제 봐도 새롭다.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생기를 얻는 기분이 든다. ‘역시 산책만 한 게 없어. 이제 매일 나와야겠어.’라고 생각하고 또 한참을 오지 않을게 뻔하지만 그래도 좋다. 매번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마음의 원리라는 게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음식의 힘을 많이 믿는 편이다. 시간이 넉넉할 땐 요리를 한다. 평소 해보지 않은, 조금 복잡한 메뉴를 고른다. 되도록이면 시판 제품을 쓰지 않고 하나하나 만든다. 레시피 여러 개를 비교해가며 몇 시간씩 씨름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진다. 원래 요리를 좋아한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을 제일 잘 담아내는 그릇이 아닐까 싶다. 그 상대가 꼭 남일 필요는 없다. 나 자신에게도 정성 들여 차린 음식을 먹인다. 과정도 즐겁고, 결과물도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드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권태로움의 형태는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무거워지고 복잡해지는 쪽이다. 그래서 가벼워지고, 단순해질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하려 한다. 알맹이만 남고, 잡스러운 감정은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 기분이 낡아지고, 먼지가 쌓이면 부지런히 빗자루질을 해주자. 그건 그저 먼지일 뿐, 내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