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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Nov 21. 2021

나만의 특별한 소재

웰 컴 백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2021년 3월, 따뜻해지는 봄날에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이었는데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내 삶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인데 이를 이루는데 딱 필요한 내용이었다.   

   

첫 만남부터 너무나 설레고 두려웠다. 설레는 이유는 내가 그토록 쓰고 싶어 했던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기대가 되었다. 한편 나만 제외한 모두가 청인일 텐데, 내가 처음 듣는 목소리일 텐데 과연 실수 없이 잘 알아들을까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과는 달리 대부분의 참여자가 여성이었고, 나는 고주파수(높은음)가 그나마 더 잘 들리는 편이라 여자 목소리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강사님의 발음도 비교적 정확했고, 모두가 마스크를 벗은 채 카메라로 입모양을 보여주니 프로그램 참여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참 다행이었다.


‘휴~ 이 프로그램은 끝까지 잘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했다.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이냐, 나를 위한 글을 쓰느냐에 따라 글 쓰기의 방향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하게 나를 위해 글 쓰고 싶었다. 죽기 전에는 내가 쓴 글에 대한 책 한 권 정도는 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삶에 관한 글을 쓰고 싶은데 참여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청각 장애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공감하기 어려울 텐데 이런 글을 소재로 써도 되는지 고민이 되었다.     

 

“강사님, 저는 저를 위한 글을 쓰고 싶은데 소재가 조금 독특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공감이 안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나요?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요? 아니면 선생님 자신을 위해 쓰고 싶은 글이 있는 건가요?”     



처음에는 이 글쓰기 프로그램의 제목에 이끌려 신청하게 되었다.


‘나를 알아가는 에세이 쓰기’     


나는 저 제목대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본 영상에서 어느 한 작가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보고 나서야 글을 쓰는 방향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글 쓰고 나서 내 글이 독자에게 공감이 될까 안될까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공감은 독자의 몫이지 작가의 몫이 아닙니다. 그러니 작가는 그저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그냥 나의 이야기를 하자.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마음에 공감을 해주는 독자가 있겠지~. 한 명도 없어도 괜찮다. 상관없다. 내가 작가이자 독자이면 된다. 내가 나를 공감하고,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주며 스스로를 치유해가면 될 것이다. 나를 알아가려면, 결국 나를 위한 글을 써야겠다!   

  


첫 합평회 때 나를 위해 쓴 첫 글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사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라고 말이다.

그 사실이 뭐라고 그리 손이 떨리던지...

콩닥콩닥 가슴이 너무나 뛰어대고 혹시라도 존재할지도 모르는 선입견 때문에 내가 상처 받을까 두려웠었다. 하지만 정말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모두가 나의 담담한 고백에 오히려 고맙다고,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각자 다른 부족함이 있을 텐데 그 내용이 다를 뿐이라며 나를 장애인이 아닌 그들과 똑같은 글 쓰는 사람으로 바라봐주었다.     


 

심지어 어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까지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게 큰 울림을 주는 뜻깊은 한 마디다. 그런 말을 해준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저는 수어시인님의 특별한 경험이 부러워요. 물론, 청각장애로 인해 불편하고 어려웠을 상황이 무조건 좋지는 않으셨겠지만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유일무이한 소재거든요. 수어시인님께서만 겪는 그 이야기는 수어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강점이잖아요. 그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수어시인님은 꼭 글을 계속 써주시면 좋겠어요~.”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참신한 관점이었다. 그를 계기로 나의 '불편한' 인생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로 180도 완전히 전환되었다.

나만이 겪고, 나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특별한 글을 쓸 수 있어 오히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평생 내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청각장애가 글쓰기 세상에서만큼은 특별한 다이아몬드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반짝반짝.


      

글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 저서로 책을 출간하는 경험도 해보고, 책을 직접 받아보니 너무나 뿌듯하고 나 자신이 기특했다.

특히, 나 스스로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그간 나를 자책하고 낮은 자존감으로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한 적이 별로 없었던 내게 오래간만에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이야~ 그렇게 책 내고 싶어 하더니 결국 해보는구나! 나중에 내가 쓴 글로 꽉 채운 책을 내보자!'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몇몇 선생님들과 ‘끌림’이라는 합평회를 계속했다. 제법 몇 개월간 쭉 이어갔고 덕분에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하반기 들어서면서부터 스케줄 조정이 어려워져 너무나 아쉽지만, 2021년 9월 27일을 합평회가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 이후로 2달 가까이 글쓰기에 손을 놓았는데, 언젠가부터 뭔가 헛헛한 마음이 올라왔다. 바빠진 스케줄만큼 더 열심히 살아가며 배움의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충만함이 조금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내내 몰랐다가 오랜만에 브런치에 올렸던 글 '봄을 봄(Seeing Spring)'을 읽던 중 갑자기 문득 떠올랐다.    

  

‘아하, 내가 글을 안 쓰고 있었구나.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구나.’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몰입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때는 이 세상이 온통 나로 꽉 차있는 충만함이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노트북을 열고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나의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기다리는 글을 써야겠다.    

 

노트북 속 글쓰기 폴더와 브런치 속 작가의 서랍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거는 듯하다.


‘수어시인 작가, 어서 와~ 역시 돌아올 줄 알았어.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해 ^^’    

 

오늘도 나는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평범한 하루를 이어간다.

그 평범한 하루에 대해 특별한 글을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눌러써본다.



아~ 이제야 마음이 충만하구나. ^0^


한 때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며, 창작의 고통과 더 나아지지 않는 필력에 좌절하여 글을 놓았지만, 결국 다시 글을 쓰는 것을 보니 나는 아무래도 작가로서의 삶도 필요한 가 보다.


웰 컴 백 '나를 위한 글쓰기'

웰 컴 홈 '나를 감싸주는 마음'

웰 컴 고 '나를 알아가며 글 쓰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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