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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Jun 04. 2022

보이지만 안 보인다.

20분 글 쓰기(4)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다. TV 화면 속에서 작은 동그라미 안에 손을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여대는 그 사람을 말이다. 바로 수어 통역사이다. 수어 통역사를 화면의 16분의 1 정도 크기로 아주 작고 희미하게만 보다가 처음으로 크게 본 날이 기억난다. 바로 코로나19 브리핑 발표할 때 바로 옆에 서는 수어 통역사를 보게 된 날이었다. 그전까지는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통역을 했지만, 이젠 발표자(화자) 옆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게 뭐 대단한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농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변화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수어를 처음 배우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뉴스 화면 속 하단에 나오는 수어 통역을 보면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분명히 수어 통역사가 수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만, 수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얼까? 왜 나는 볼 수 없었을까?


1. 너무 작아서 명확한 수어 동작 및 비수지가 안 보인다.


물론 내가 수어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잘 못 알아보는 부분도 있겠지만, 음성으로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입모양보다 수어 통역사의 몸이 더 작게 보인다. 게다가 수어의 5요소와 비수지를 구분해서 각기 다른 뜻을 구분해야 하는데 잘 볼 수가 없었다.


2. 수지 한국어를 너무 남용해서 수어 문법이 누락되었다.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수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 쳐도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국어 기준으로만 수어 단어를 나열한 것은 결코 수어라고 볼 수 없다. 나도 이걸 수어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많은 공부가 필요했었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수지 한국어의 형태로 잘못 구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어처럼 보이지만 수어가 아닌 것이었다.


3. 지역마다, 연령대마다, 사람마다 수어 표현 형태가 다양하다.


내가 알고 있는 수어 형태는 교육원, 협회, 지인들과의 만남에 국한되므로 다양한 지역, 연령, 사람들의 수어 표현을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어도 모르는 새로운 수어 형태가 나올 수도 있고 이에 대한 사전적 자료도 부족해 찾기도 어렵다. 지인이나 전문가가 쓴 자료 등을 찾아 알게 되거나 혹은 모르는 상태로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맥락으로 대충 유추해서 뜻을 알 수도 있지만 명확한 뜻을 알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답답할 때가 많다.




참,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보고 있지만, 안 보이는 것이 있다니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참 진리였다. 내가 수어를 아는 만큼 보이는 수어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볼 수록, 제대로 볼 수록 수어는 점점 더 잘 보이게 된다. 


수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볼 줄 아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어 대응한 수어 표현을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수어를 제대로 보는 방법을 먼저 이해하고 활용해서 수어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 오래 보아야 빛난다는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글귀가 떠오른다. 수어도 그런 것 같다.



오래 잘 보아야 수어는 빛난다.

제대로 보아야 수어가 보인다.

수어가 보이면 농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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