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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Jun 05. 2022

사실과 희망 사이

20분 글 쓰기(5) 어떠한 선택이든 최선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농인으로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소통 면에서 말이다. 오늘 514챌린지 미니 강연을 들으며 나의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면서 내게 어떤 것이 더 적합하고 필요했던 말이었을까 고민해본다.


'애매모호한 배려로 인한 오해보다는 팩트로 아프지만 확실하게 소통해야 한다.'


농인의 부모 중 대부분이 청인인데 자식을 키우면서 아마 자신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음성 언어를 반복 연습시키고 발음, 청능 훈련을 한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팩트를 자식에게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행여나 자식이 본인의 청각 장애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



'괜찮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어~!'


'너는 조금 불편한 것뿐이지 못 하는 게 아니란다. 잘 안 보이면 안경 쓰듯이 너도 그렇게 보청기 쓰는 거야'


'너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전혀 없어. 연습하면 충분히 잘 듣고 말할 수 있게 될 거야'


가정 내에서만 소통한다면 이렇게 말해주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 농인 아이가 커서 사회에 나갔을 때 수많은 청인들 속에 들어가서 소통을 하면서 생긴다. 



'괜찮다고 했는데,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소통이 안 되는 거지?'


'보청기를 써도 상대방의 입모양이 안 보이면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일할 때 항상 상대방의 입모양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해가 생겨. 안경 쓰는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문제가 발생하지?


'나는 그렇게 수 없이 연습하고 듣고 말하는 훈련을 했는데 왜 잘 안 들리고 발음이 안 좋지? 대화가 이렇게 힘든 이유가 무엇이지? 나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 거지?'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 자립하게 될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씀과 너무나 다른 현실에 충격받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무조건 괜찮고 다 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청각 장애로 인해 못하는 영역이 생각보다 많이 있어 청인들과는 다른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어릴 때부터 이렇게 들어왔다면 내가 현실적인 계획을 짜고 나에게 맞는 성장을 하며 나의 소통 방식을 구축하고 나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네가 비록 잘 듣지 못하지만, 그만큼 네가 잘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 영역을 발견하고 잘 키워나가도록 도와줄게~'


'너는 청인처럼 듣고 말하는 것이 안될 수도 있어. 하지만, 청인처럼 살아가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돼. 너는 그냥 너답게 너 자신을 수용하고 너만의 세상을 넓혀가면 된단다. 너만의 우주를 맘껏 펼쳐보렴!'


'청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잘 듣고 말할 줄 안다면 그것도 너의 또 다른 능력 혹은 기술을 가지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청인들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서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거든. 네가 원한다면 구어 훈련을 받도록 해줄게. 하지만, 잊지 마. 네가 꼭 그 훈련을 받아야만 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아니야. 수어도 하나의 언어이고, 네가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둬. 어떠한 언어를 선택하든 부모로서 네 언어를 배우고 함께 소통하려고 노력할 게! 언제나 너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할게. 너를 믿는다.'




그 부모도 그 농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처음이라 자신들의 소통 방식과 언어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공부하고 노력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상황을 주입시키고 단정하고, 아이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억압시켜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팩트를 알고, 그에 맞는 대처 방식을 다양하게 제안하여 함께 나아가야 한다. 농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영역이 많고 청인이 하지 못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신뢰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농인도 청인도 어느 누구도 혼자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어떠한 소통 방식이든 육아 방식이든 아이를 위해 애쓰는 모든 부모를 응원한다!

최선을 다하되, 더 나은 방식으로 애쓸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면서 노력해보자!

팩트를 말하든 배려로 감싸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지금부터라도 객관적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알면 된다.

내일부터라도 아이에게 맞춤 방식으로 서로에게 표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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