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어시인 Jun 07. 2022

크기와 높이 속에 숨겨진 권력

20분 글 쓰기(7) 권력을 시각적으로 살펴보기

'벌거벗은 세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내용 중 하나가 건축물 속에 권력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발명된 건축물 중 권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계단이었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가기 위해서는 계단 밑에서부터 위를 우러러보아야 했다.

즉, 높이 있는 자는 권력이 있는 자를 뜻하며 계단을 점령한 사람이 그 힘을 누릴 수 있었다.


또 다른 예시로는 동굴 벽화에 나타나는 그림의 크기이다.

어느 시대부터인가 사람보다 동물, 식물 등 다른 사물을 더 작게 그린 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크기가 클수록 더 큰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고 그 벽화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전보다 더 크게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고대 역사에서만 나타나던 그 모습이 현재 민주주의 가치가 기본 바탕인 지금도 엿볼 수 있다.

수어 통역이 들어간 뉴스 화면이다.

사실 청인 입장에서는 자료화면을 제외하고 아나운서가 말하는 장면을 볼 때는 굳이 아나운서의 입 모양, 표정, 얼굴의 움직임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나운서가 읽는 뉴스 내용을 귀로 듣는다.

반면 수어 통역사가 하는 수어는 얼굴(특히, 눈과 입)의 움직임, 표정, 수어 동작, 수어 공간 등 시각적 형태를 종합적으로 동시에 보고 뜻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아나운서의 얼굴보다도 작은 동그라미 안에 집어넣어 알아서 보라고 화면에 배치하였다. 이는 마치 청인에게 TV 볼륨을 보통 15로 해야 잘 들리는 수준을 1로 대폭 줄여서 뭔가 음성이 아주 작고 희미하게 나오는 것 같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들리기만 해도 되는 경우는 화면을 작게 배치하고 보아야 하는 것은 화면 가득 채워야 하는 게 맞는 이치일 텐데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수어 통역사가 들어간 동그란 영역이 나타내는 크기는 너무나 작고 높이도 화면의 하단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권력의 차이를 나타낸다.

언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시청자의 다수가 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청인을 크게 잡고 수어를 보는 자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저 아래에 조그맣고 희미하게 잡는다. 그리고 나선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며 아주 뿌듯하게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이름만 허울만 갖춘 수어 통역 말고, 진짜 수어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


2월 3일 수어의 날을 맞이한 날, 어느 한 뉴스가 잠깐 앵커와 수어 통역사 배치를 바꿔 보여준 적이 있었다. 즉, 앵커의 자리에 수어 통역사가 나오고 기존 수어 통역사의 자리에 앵커가 나와 뉴스가 진행된 것이다.

그게 진짜 뉴스였다. 청인은 청인대로 앵커의 목소리를 듣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농인은 농인대로 수어가 제대로 잘 보이니 그제야 모두가 뉴스를 평등한 조건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 모습이 Default로 세팅된 뉴스가 나오지 않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그 뉴스가 나오기 위해서는 나는 오늘도 부단히 수어를 배우고 활용하고 교육 방법을 고안해야만 한다.

모두가 수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어 통역사가 앵커의 자리에 와도 어색해하지 않을 인식을 가지도록 일조해야겠다.


크기와 높이를 통해 권력을 과시하고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여 소수자들을 더 소외하지 말자.


크기와 높이를 통해 권력을 함께 누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손 잡아주며 사회를 같이 꾸려가자.


크기를 키워야 할 것은 키워주게 도와주고 높이를 높여야 할 것은 높이도록 디딤돌을 대주며 평등한 민주주의를 완성해 가자.






크기와 높이 속으로 권력을 꽁꽁 숨겨두지 말고,

크기와 높이 밖으로 협력을 꼭꼭 나타내어 보자!


작가의 이전글 창의적 위축 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