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땐 몰랐었지

나의 삶도 역시 역사가 된다는 걸

by 케슬시인

10년 전 한창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이었을 때, 나는 관련 다큐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집 안 온갖 장난감들과 잡다한 물건들이 뒤덮여 나의 심신을 지치게 한 그 때,

물건의 개수를 줄여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만큼만 소유하면 삶이 훨씬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매일매일 내가 잘 쓰지 않는 물건, 아깝지만 오랫동안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 개수가 너무 많아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던 물건 등등 정말 많은 것을 버리고 조금씩 거실의 텅 빈 공간을 확보해갈 때,

나는 그 물건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버렸다.


그건 바로 내가 어릴 적부터 착용했던 보청기들,,,

만 7세에 처음 착용했던 귀걸이형 보청기부터 큼지막한 귓속형과 초소형 귓속형 보청기까지.

나의 삶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물건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콕콕 아프게 하기도 했다.

오디즘(청능주의)으로부터 차별받고 소외당한 지난 날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가지고 있기 싫었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쓰라리고 그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현재도 오디즘이 만연해있는 현실이 여전하지만, 지금도 이렇게 고달픈데 무엇때문에 내가 그리 힘들고 괴로웠는지 이유도 몰랐던 과거는 더 떠올리기 싫어서 곧장 쓰레기로 처분하였다...


그런데 몰랐었다.

그 물건이 내 삶을 여실히 드러내줄 수 있는 산물이었다는 것을.

내가 살아온 역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물건이었다는 것을.

아프지만, 뗄레야 뗄 수 없었던 나의 시그니처 상징이었음을.


내 심신이 지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 물건들이 내 눈에서 사라지면 조금이라도 홀가분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온다.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부모님께서 애써 마련해 준 귀한 물건이었음을.

내가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썼음을 보여주는 물건이었음을.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역할을 해주는 소중한 물건이었음을.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아마 나의 성향 상 찍었을텐데, 그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사진도 물건도 잘 기록하고 정리를 해둬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저 쌓아두고 찍고 방치해버렸다.


나의 삶도 지난 시간도 그렇게 방치해버린 것이 아닐까?

대학원 들어와서 본인 연구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때 아차 싶었다.

이럴 때 어릴 적 착용했던 보청기들이 나의 자문화 기술지 논문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었을텐데,,,

너무나 아쉽다.


이젠 안다.

나의 지난 과거가 나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청인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귀한 정보가 될 수 있음을.

순간순간의 모음을 잘 기록하고 정리해두면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지금 나의 삶을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따뜻한 공감을 가져올 수 있음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기록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보청기를 착용하여 살아온 삶에 대해 기술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료들이 거의 대부분 음성 언어 중심이고 청각장애인이자 농인의 삶에 대한 자료는 아주 극소수이기에 나만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래서 농인들은 기록하고 이야기 해야한다.

농인의 역사와 삶을 공유하고, 수어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매일 기록해야 한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나로서는 대학원생으로서 농인의 시각을 담을 수 있고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청각장애인 엄마로서 느끼는 행복과 독특한 삶의 방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이런 나를 자식으로 키웠던 부모를 바라보면, 이 사회에 맞서기 위해 고군분투한 나날들을 말할 수 있다.


'대량 디지털 정보의 역설'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수 없이 많은 사진들을 찍고 캡처하지만,

사람의 뇌에 남는 순간은 정말 짧고 어쩔 때는 1초만 스쳐 지나가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로 찍고 사진으로 인쇄하여 앨범에 정성껏 한장 한장 붙여 책처럼 넘기며 보는 그 기억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아날로그 정보는 따뜻하고 오래간다.


그 날을 위해 내가 쓰는 오늘의 보청기를 찍어서 사진으로 인쇄하고 앨범으로 남겨야겠다.

미니멀리즘에 반하는 방식이지만, 그게 어쩌면 역사적 산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테니까.

나는 나를 더 열심히 기록하고 나의 삶을 이야기해야겠다.

이젠 보청기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

나에게 소리를 대신 전달해주려 애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자음 변별하기 어렵고 입모양을 봐야지만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보청기가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다.

오늘도 고장나지 않은 채 열심히 세상의 소리를 전달해준 보청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회사에 가면 청인들의 목소리가 버거워 소리를 줄여주는 기능을 가진 보청기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필요할 때만 소리를 키우고, 나에게 맞는 삶을 선물해 준 귀한 보물이었음을 깨닫는다.


30년, 40년, 50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때가 온다면 누군가가 나의 현재 사진을 보고 이야기할 지 모르겠다.

2026년에 물리적으로 증폭하는 기능을 가진 보청기를 직접 착용했던 역사가 있었노라고.

(미래에는 아마 칩 형태로 소리 증폭하는 기기가 아주 초소화된 보청기가 개발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자 애쓰는 농인이 있었노라고.

듣는 삶을 교육 받고 보청기로 세상을 살아갔지만, 결국 눈으로 보는 삶을 택했노라고.

그래서 수어가 사라지지 않고, 농인의 역사가 보존될 수 있었노라고.




지금은 몰랐겠지만, 그 땐 알게 되지 않을까?


나의 삶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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