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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Jun 27. 2021

'ㄱ'이  'ㅣ'와  'ㄹ'을  만나면?

길에 대한 재해석


#1. 점으로 시작되는 ‘ㄱ’     


“너 그거 알아? 길고 큰 저 길도 사실 처음에는 작은 점이었어. 그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그 선은 ‘ㄱ’을 이루고 ‘ㅣ’와 ‘ㄹ’을 만나 마침내 길이 되더라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내게 길이 이렇게 말을 건다. 내가 걸어가는 오늘 하루가 맞게 가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날이 많다. 새로운 길을 가고 싶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쭈뼛쭈뼛 주저하는 날도 많다.     

 

 기역 하나만으로 길이 되지 않지만,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를 만들 수는 있다. 기역 글자 밑에 선 하나를 그으면 키읔이라는 친구가 생기고, 기역을 하나 더 적으면 쌍기역이라는 쌍둥이가 생기니 외롭지 않고 얼마나 신이 날까. 그렇게 길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매력이 있다. 선을 만들기 위한 점도, 길을 만들기 위한 기역도 서로에게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      


 내가 살아가는 순간이 점이 되고, 선택과 행동이 모여 선이 된다. 물론, 점이 여기저기 튀는 부분이 있을 테고, 선이 삐뚤빼뚤해지거나 다시 돌아가 겹선을 만들기도 한다. 선을 그리다가 점선이 되기도 원형이 되기도 한다. 어느 하루는 선을 그을 힘도 없어 색깔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꾸준히 하루하루 선을 그리다 보면 1년, 2년이 지나 기역이라는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렇게 길이 시작된다.      


          

#2. ‘ㄱ’의 정신적 지주, ‘ㅣ’     


 홀로 가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날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뭐라도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데, 열심히 길을 만들려는 ‘ㄱ’에게 ‘ㅣ’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아주 잘 해내고 있어. 내가 곁에 있어 줄게.’     


 가족이든, 친구이든, 지인, 혹은 나 자신이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직진해도 된다고 내게 용기를 주는 기둥이 ‘ㄱ’에게도 나에게도 있어야 한다.   

   

 바닷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대처럼 꼿꼿이 서 있는 ‘ㅣ’처럼 나 스스로가 나의 등대가 되어주자. 섬마다 다른 등대가 서 있듯 사람마다 인생 등대가 다르게 세워진다. 등대로 가는 길부터 만들 수도 있고, 등대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바다 지도를 만들고, 뱃길을 미리 닦아놓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이 곧 길이 되어 나의 삶을 채워준다.            


    

#3. ‘ㄹ’에서 숨 돌리고, 다시 시작     


 점으로 시작한 ‘ㄱ’이 정신적 지주 ‘ㅣ’와 함께 달려가지만, 미완성이다. 마지막 ‘ㄹ’을 만나야 비로소 길이 완성되는데, 과연 이 ‘ㄹ’은 무엇을 의미할까? ‘ㄹ’ 글자를 찬찬히 살펴보면, 앉을 수 있는 의자 같이 생겼다.

 

 바쁘게 달려온 나에게 한숨 돌릴 수 있도록 쉼을 주어야 한다. 로댕처럼 의자에 앉아 나를 돌아보고, 길을 수정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그 쉼을 발판삼아 새로운 길을 만드는 힘을 만들어낸다.  

   

 나는 지금 의자에 앉아 잠시 숨 돌리고 있다. 바로 ‘작가’라는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다. 매주 찍는 점이 모여 ‘글’을 만들어가는 나를 믿고 가보자. ‘길’이라는 글자처럼 ‘글’도 점 하나부터 찍어서 시작하면 되겠지.


나는 오늘도 나만의 '글길'을 터기 위해 이렇게 소소한 점으로 차근차근 글을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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