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마음의 계절

by 타인head

꽃이 만발한 봄이다. 요즘은 온난화 탓인지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봄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푸르른 하늘, 바람에 살랑이는 연초록 잎사귀, 그리고 거리마다 수줍게 얼굴을 내민 꽃들. 봄은 그렇게 조용히 찾아와 우리의 마음에 작은 미소를 피운다.


그런데 자연의 계절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사람의 마음에도 계절이 있다면 사람마다 느껴지는 계절은 각자 다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최근 두 명의 멋진 여성과 나눈 대화에서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한 분은 50대 중반의 가까운 동네 지인이었고, 또 한 분은 칠순이 가까운 친정엄마였다. 며칠 전, 그 지인과 함께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하늘이 얼마나 푸른지, 꽃이 얼마나 예쁜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평범한 순간 속에서,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렇게 하늘이 푸르고 꽃이 예쁜 걸, 작년부터 느끼기 시작했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이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공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우연히 비슷한 말을 들었다.


“길을 걷다가 예쁜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컸을까’ 하고 생각이 들어.”


“길가에 핀 꽃을 보면, ‘이렇게 예쁜 색이었나?’ 하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해.”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이셨다.


“나는 요즘에서야 세상이 예쁘게 보여. 예전엔 정말 여유가 없었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랬구나, 엄마.”


40여 년 전,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4년 전엔 큰딸까지 세상에서 먼저 떠나보내신 엄마. 늘 바쁘고 치열하게, 무언가를 감내하며 살아오셨던 그 시간 속에서 과연 무엇이 엄마의 눈에 예쁘게 보였을까. 그랬던 엄마가 이제야, 인생의 어느 고요한 순간에 멈추어 서서 처음으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느끼신 것이다.


그 말이 내 마음 깊이 남았다.


자연의 봄은 매년 찾아오지만, 마음의 봄은 때가 돼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오는 것이구나.


누군가는 젊은 날에 그 봄을 맞을 수 있고, 누군가는 수십 년을 돌아서야 비로소 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우리 안에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삶이 그 여백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이 그 여백을 더디게 메우기도 한다.


나는 그 지인에게도, 엄마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지금 마음에 봄이 온 것을 축하드려요.”


그리고 오늘,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나도 그 봄을, 천천히 걸으며 맞이해 본다.


마음에도 봄이 오는 날은, 참 고맙고 눈부시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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