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브런치에 쓴 글이 어느새 100편을 넘었다. 오랫동안 혼자 일기장에 개인블로그에 쓰다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서 브런치를 등록하고 쓰기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한 가지는 '내 이야기를 쓰자.'였다. 내가 한 생각을, 내 한 경험을, 그리고 내가 배운 것들만을 글로 옮기자는 마음이었다. 진실해야 공감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101번째 글에서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최근 가족 여행 중 나눴던 한 대화를 떠올렸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1년에 한 번 보는 터라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간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날도 여러 안부를 묻다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고, 4년 전 세상을 떠난 (나보다 6살이 많은) 큰언니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가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내게 보낸 메시지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이었다.
'두 엄지척’
급성 신부전으로 십 대 초반에 두 신장을 모두 잃었던 언니는 평생을 투병하며 살았다. 두 번의 이식 수술, 반복되는 거부 반응,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받는 투석 치료를 했다. 그 와중에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인 자격증도 땄다. 몇 년간은 사회생활도 했지만 그마저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오래 이어가진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반려견과 책을 벗 삼아 보냈다.
이민 후엔 주로 문자나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언니는 늘 힘들다는 말 대신 책을 주문했다거나, 재미있게 본 여행 프로그램, 새로 나온 모바일 게임 얘기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가족들 사이에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나 봐” 하는 걱정이 돌았지만, 언니는 늘 웃으며 말했다. "사람한텐 다 이길 수 있을 만큼의 어려움만 오는 거야. 내가 좀 큰 사람인가 보지~" 그 말에 가족들은 울면서 웃었고, 언니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언니가 한 말을 엄마에게 전해 듣고는 한참을 울었던 기억도 있다. "엄마, 내 동생들이 아픈 거보다 내가 아파서 다행이야."
세상을 떠나기 전날,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컨디션 어때?”라고 문자를 보냈다. 손이 너무 부어 글자를 치는 것도 힘들어서, 언니는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바로 ‘컨디션 최고’의 두 엄지척.
그리고 몇 시간 뒤, 새벽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가 다시 병원으로 이송됐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는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캐나다에 사는 나로서는 전화기를 통해 그 상황을 지켜보며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언니에 대한 기억들을 조금씩 꺼내 볼 수 있을 즈음, 그동안 언니에게 받은 문자들을 다시 꺼내 읽어봤다. 놀랍게도 그 안엔 아픔이나 절망의 말이 거의 없었다. 대신 기대감, 웃음, 소소한 즐거움들로 가득했다.
그 문장들 하나하나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언니는 인생을 ‘Two Thumbs Up’으로 살았구나.”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서 깊은 울림이 느껴지고 몸이 떨렸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그날 이후, Two Thumbs Up은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인생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다. 고통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고, 슬픔은 예고 없이 문을 두드린다 불만과 실망은 늘 문밖에서 들어올 틈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희망과 감사함, 기대와 기쁨도 우리 곁에 있다. 언니가 늘 행복해서 엄지척을 살았던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웃으며 살았던 건 아닐까.
그 마음이, 언니의 인생을 그렇게 빛나게 만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런 한 인간의 높은 성품을 옆에서 지켜보며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어서 언니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Jean Giono's The Man Who Planted Trees의 첫 장에 나와있는 글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할까 한다.
For a human character to fully disclose its truly exceptional qualities, one needs the good fortune to observe its actions through the span of long years. If these actions are stripped of all selfishness, if these actions function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matchless generosity, if it is made absolutely clear that these actions were done for no reward whatsoever, but rather that they made a visible mark upon the world – only then can we say, without the risk of being wrong, that before us stands an absolutely unforgettable human character.
한 인간의 성품이 지닌 진정한 위대함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이 필요하다. 그 행동들에 이기심이 전혀 없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대함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행해졌다는 것이 명백해질 때, 그리고 그 행동들이 세상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주저함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이는 결코 잊히지 않을 위대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