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게 아니라,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던 것
비평준화 시절,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불러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울음을 느끼며, ‘실패’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처음으로 새겨졌다. 그 경험은 단순히 시험에서의 낙방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전체가 부정된 것 같은 상처로 남았다.
후기로 간 고등학교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를 신뢰하지 못했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 쌓아왔던 공부 방식, 나름대로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습관들을 모두 부정했다. 자주 하던 노트 필기 습관도 멈추었고, 책을 먼저 훑어본 뒤 구조를 파악하고 난 뒤 깊게 읽는 방식도 고집하지 않았다. ‘내가 실패한 것은 내가 틀린 방식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패배의식때문인지 고등학교때 문제를 풀고 답이 틀리면 왜 틀렸는지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실수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 부끄럽고 스스로에게 화가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에 밴 습관이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아서 여전히 사용하기는 했지만, 마음속에는 늘 ‘이게 과연 옳은 걸까?’라는 의심과 자신감 부족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대학을 지나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했다. 그러다 캐나다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접한 연구 논문이 나의 오랜 의심을 해소해주었다. 그 논문은 metacognition(메타인지), 즉 학습자가 자신의 사고 과정을 성찰하고 조절하는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내가 어릴 적부터 해오던 공부법, 책을 먼저 훑어보고 구조를 파악하는 것, 노트에 핵심을 정리하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구성하는 것 등등이 바로 교육학적으로 검증된 메타인지적 학습 전략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내가 했던 모든 공부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틀린 게 아니라,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던 것이였다.
돌이켜 보면, 실패는 내 방법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아직 그 방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만약 내가 실수의 이유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했더라면, 내가 사용했던 방법들이 그때처럼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요한 것은 ‘방법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것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자신감과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실패로 인해 자신을 부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꾸준히 배우고 공부하는 습관자체는 몸에 베어 있어서 감사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배움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 방식의 가치를 재발견했고, 무엇보다 자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실패했다고 내가 한 모든 게 틀린 것이 아니다. 실패는 나를 부끄럽게 한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성장의 토대였다. 그리고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교육가가 됐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스스로의 방법을 더 깊이 이해했고, 어떤 시련이 와도 나를 전부 부정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