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전 헌법재판관 문형배 판사가 「손석희의 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말이다.
"문장이 아름다우면 생활이 좀 피곤하다. 그런 느낌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과거에 문 판사가 했던 발언들을 다시 꺼내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자신이 했던 말들을 돌아보며 회고처럼, 때로는 푸념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에 많이 동의했고, 깊게 공감했다.
살다 보면 내가 던진 말이 화살처럼 되돌아와 나를 찌르는 순간이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예전에 했던 취업 관련 수업 중 하나는 ‘목표 설정과 성취’에 관한 것이었다. 이 주제와 관련해 설명하던 중, 나는 예시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목표는 내가 돕는 사람들이 백 명 이상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면 나 자신에게 구찌 시계를 선물하겠다.”
그 당시 실제로 내 목표였다. ‘백 명의 취업을 하도록 돕자. 그러면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자, 구찌 시계를 사자.’ 그렇게 다짐했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취업 프로그램이었기에, 누군가의 취업을 성사시킨다고 해서 내 연봉이 오르거나 보너스를 받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스스로를 격려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마음으로, 나만의 목표를 세운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하게도 그 목표를 이뤘고, 실제로 시계를 샀다. 그러나 막상 손목에 차보니 학교에서 차고 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 듯했고, 왠지 내 마음에도 썩 들지 않아 결국 반납하고 말았다. 그 일은 그렇게 잊힌 듯 지나갔다.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일이 끝나고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을 때였다. 그때 내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이 그곳에서 교사 인턴십을 하고 있었다. 서로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고 포옹을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이 내게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선생님, 그래서 구찌 시계 샀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수업 중에 무심히 던졌던 한마디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좌표나 기억의 표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영향을 남긴다.
그 사건은 내가 하는 일을, 내가 하는 말을 다시 깊게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은 씨앗과 같다. 던지는 순간에는 작고 가벼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땅에 뿌려졌느냐에 따라 나무가 되기도 하고, 가시덤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 씨앗을 어떻게 심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평소의 대화에서도 내가 하는 말은 곧 나의 삶을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무심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용기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짐이 되기도 한다.
말의 무게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때로는 돌고 돌아 다시 나 자신을 향해 되돌아온다. 말은 나의 인격이자, 나의 기억이자, 결국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