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1년에 즈음하여
...[1편에 이어]
2주가 지나 체온 측정을 끝낼 수 있었고, 마침 중국 내의 상황이 많이 좋아졌었기에 봉쇄가 조금 느슨해지고 고향에서 복귀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늘어 슬슬 사람 사는 곳의 분위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나는 묘한 해방감을 맛보았고, 이제 귀국할 일만 남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국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다시 최근 이동 여부에 대한 확인과 서약을 해야 했고, 다시 2주의 체온 측정을 '명'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지의 관리사무소로 매번 내가 직접 방문해서 체온을 측정하고 오는 것으로 방법이 바뀌었다. 체온을 측정하러 가면 때때로 공지사항을 말해주거나 체온 기록을 위한 약간의 대화가 오간다. 가끔 사람이 몰리면 줄을 서서 체온을 재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 주변에서 나의 여권을 본 사람들의 '저기 한국사람이다'라는 수군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경계하며 피하는 느낌과 함께...
일반적으로 중국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꽤 좋은 편이다. 어디를 가도 호의적이고 항상 그렇게 느끼면서 지내왔었다. 그런데 한국에 감염자가 폭증하는 상황(당시 한 종교단체 관련)이 벌어지고 나니 어느새 한국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아, 나는 1월 초부터 이 단지 안에서 움직인 적이 없고, 되려 당신들이 고향에 다녀오느라 타 지역을 오가지 않았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괜히 튀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2주라는 시간을 또 제약받으며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거부하거나 피해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냥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꾹 참고 매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체온 측정에 필요한 2주가 또 흘러갔다.
그 이후에는 대중교통도 간간이 다니고, 식당들도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매번 출입증 확인과 체온 체크, 그리고 최근 타 지역에서 들어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지역 큐알코드를 보여줄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있게 되었다. 일상생활이 일부나마 가능한 상황이 되니 다행히 이전과 같은 고립감은 털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마주치며 활동을 하기에는 감염의 공포가 또 다른 압박으로 다가왔고, 그보다 '귀국'이라는 더 큰 과제가 내 앞에 남아 있었다.
귀국과 관련해서는 항공편 취소와 그에 따른 체류기간 및 비자 연장 문제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영사관 관계자와 그렇게 긴밀하게 통화해 본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공편은 어렵게 예약을 해 놓아도 한 달 전, 혹은 그 보다 적은 기간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가 반복되었다. 총 4번의 항공편 취소를 겪고 항공편 예약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가는 항공편이 없어 비자상의 체류기간을 넘기는 사람들이 속출하다 보니 현지에서도 출입경에서 임시 비자를 발급해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아마도 중국 출입국 관리 사상 초유의 사태가 아닌가 싶다.
나는 항공편 문제로 예정보다 4개월 정도 더 체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극적으로 운항이 허용된 다른 지역의 임시 항공편의 티켓을 수소문해서 어렵게 구할 수 있었고, 그곳으로 고속철을 타고 이동한 후 당일에 다시 비행기를 타는 드라마틱한 여정을 거쳤다.
그러한 내용들은 너무나 장황하기도 하고 다시 되새기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기 때문에 어찌어찌해서 잘 귀국하여 검사받고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자가격리를 지키고 이렇게 고국의 품에 안겨있다는 나름 푸근한 결말로 마무리 짓고 싶다.
아직도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으며, 1년 사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하느라 모두 이 새로운 변화 앞에 풋내기가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나이가 어떻든, 무슨 있을 했으며 어떻게 살아왔건 간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대격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마무리되더라도 아마 전과 같은 일상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변했고 이제는 적응해야 하며, 각자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 혹독한 적응기가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로 작용했으면 한다. 그리고 일과 일상은 어쩔 수 없이 달라지겠지만 어서 이 팬데믹 상황이 종지부를 찍고 모두 건강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다시 사람 냄새 풍기며 어울릴 수 있는 그때가 오기를 기다려 본다.
우리는 잘 견뎌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혼자 혹독한 고독을 겪어 본 내가 안다.
우리는 함께할 수 있어서 반드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