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1년에 즈음하여
때는 2020년 1월 말 구정 전후. 중국으로 치면 대명절인 춘절 기간을 전후해서 그야말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위기감과 공포가 극도에 달했다.
내가 앞에서 중국, 그리고 중국의 설 명절인 춘절(春節)을 언급한 이유는 그 당시에 내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의 최고 위험 지역인 중국 현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武汉)이나 그 인근 지역은 아니었지만 내가 있던 곳은 타 지역에서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유동하는 이우(义乌)라는 곳이었다. 특히나 당시에 확산이 심했던 원저우(溫州) 지역의 사업가들이 거점을 두고 많이 활동을 하는 곳이다.
춘절 기간,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대이동이 시작된다. 나처럼 타국에서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고향으로 이동을 해서 오랜 기간(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을 머물다가 하나 둘 복귀를 한다. 2020년 1월 초부터 중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큰 이슈였기에 모두들 인식은 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렇게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도시는 비워지기 시작했다. 춘절이 지나고 복귀 시기가 다가올 때, 그야말로 상황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대이동이 이루어진다면 대확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었기에 당연히 그제야 전면 봉쇄조치가 취해졌다. 중국에는 동네마다 정부의 명령체계를 따르는 '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마을의 입구는 유사시 봉쇄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즉, 마을마다 각 출입통로를 봉쇄하고 외부인을 차단하고 마을 내에서도 외부로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는 극단의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나는 1월에 출장차 약 3개월 정도의 일정으로 중국에 가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2월 초, 명절이 지나고 일이 활발히 시작되어야 할 시점에 이례적으로 공식 연휴가(빨간 날) 연장되었고, 시 정부에서는 각 회사에 중순까지 추가 연장을 권고하며 도시가 마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전 처음 겪는 너무나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무실이나 상업지역으로는 당연히 나갈 수 없었고, 내가 머무르는 숙소에는 건물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아파트 단지 전체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내가 있는 층 역시 나 혼자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저녁,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리라는 예감을 했다. 그리고 이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직 중국어가 많이 서툴기 때문에 눈치와 번역기를 동원해서 소통을 하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업무에는 통역을 대동했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서로 공유되는 안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이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인 데다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나 한 명을 두고 분주하게 움직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원을 파악한다.
- 비거주 상태의 집은 모두 단전/단수를 하고, 출입문에 봉인지를 붙여서 무단출입 방지조치를 한다.
자기의 숙소라 할 지라도 복귀 시에는 확인과 허가를 받고 입실할 수 있다.
- 거주자는 출입증을 발급받고 2일에 한 번 식료품 구입을 위한 잠깐의 외출만 허용된다.
- 매일 2회 오전과 오후에 체온을 측정하고 외출 여부를 확인하겠다.
그리고 언제 이곳에 왔으며, 최근 보름 사이 타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기재하고, 없다면 그 사실을 서약하라는 서류도 작성되었다. 이윽고 나의 인적사항과 매일 2회 체온을 기록하기 위한 칸이 나눠진 서류가 마치 현황판처럼 복도 문 옆에 붙었다.
매일 두 번씩 반복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은근히 스트레스받고 겁이 나는 체온 체크(사실 오전 10시, 오후 3시 이런 식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적막한 건물과 주변 분위기가 내 정신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밖에는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았고 길에 세워진 차들도 아예 없었다. 어딜 가나 차와 사람들로 빽빽한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런 상황은 너무나도 생소했고, 마치 흔한 좀비 영화에 나오는 을씨년스럽고 텅 빈 적막한 도시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 느낌은 막연한 공포와 허무함, 대책 없음, 궁금함, 억울함, 답답함, 지루함, 우울함 등 그야말로 복합적이었다.
식료품은 다행히 영업을 하는 주변의 중형마트가 있어서(대형마트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 배달을 시켜서 연명할 수 있었다. 중국에는 배달 서비스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활성화되어있다. 약국, 마트, 편의점의 물건까지 배달어플을 실행해서 주문을 하고 몇십 분 후 받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열 평 남짓의 방 안에서 의도치 않은 고립생활을 시작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