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의 명장면 한 컷

아날로그 추억

by 감성조작단

어둠이 내려 노란 가로등 빛이 포근하게 깔린 한산한 주택가 언덕길에 엄마와 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엄마 나 이거 여기서 해볼래"

아이는 새로 산 장난감이 궁금해서 집으로 가는 동안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 잘 가는지 한 번 볼까?"

"응, 여기 잘 올라가는지 해볼 거야"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의 태엽을 감는다.

"따라락~ 따라락~ 타닥"

바퀴를 꼭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태엽을 감던 손이 조심스레 멈춘다.

"자, 그럼 위쪽으로 잘 내려놔 봐"

엄마가 말하자 아이는 주저앉아 자동차 장난감을 언덕 방향으로 내려놓는다.

"스르르륵~ 탁탁탁" 고작 몇 뼘 언덕을 오르던 자동차가 옆쪽으로 기울며 멈춘다.

재빨리 자동차를 들어 올린 아이가 다시 태엽을 세게 감아 내려놔 보지만 어쩐지 아까만도 못하다.

바닥에 무릎을 댄 채로 기어가 장난감을 다시 들어 올리려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한다.

"여기 바닥은 울퉁불퉁하니까 집에 가서 해보자, 더 잘 될 거야"

"응, 빨리 가서 방에서 해볼래"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방바닥에 다시 굴려보지만, 자동차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두 번째 태엽을 감을 때 너무 세게 감아서 그만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자동차는 헛바퀴만 몇 번 굴릴 뿐 제대로 한 번 달려보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어릴 적 추억으로 아련히 남아 있는 나의 이야기이다.

그 장난감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작동시켜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기보다는 묵직한 철재로 만들어진 클래식카 모양의 장식품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것을 거친 바닥, 그것도 언덕길에서 굴려댔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그 자동차는 장식품으로써 내 방을 꾸미게 되었을까?

누구나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마음에 드는 애장품 장난감 하나쯤은 기억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 자동차는 나에게 그런 애장품이 되지는 못했다.

다음날 바로 그것을 샀던 동네 문구점에 가서 다른 물건으로 바꿔왔기 때문이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가지고 있었기에 모양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고장을 내지 않고 집으로 잘 가져와 얌전히 가지고 놀았다면, 지금까지도 소장하고 있을 멋진 엔틱 소품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 어린 시절의 애장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남았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안 되는 추억 중에 하나로, 다름 아닌 명장면으로...


그날 저녁 차분히 내려앉은 어둠이 깔린 그 한산한 언덕길, 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비치는 노랗고 포근한 가로등 불빛, 엄마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었던 우리 동네.

그 분위기는 영화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내 기억 속 아련한 추억 한 페이지로 남겨져 있다.

정말 짧은 순간, 그리고 너무나 사소한 일상사이지만 다른 어떤 기억보다도 나에게는 소중하고 포근한 추억이다. 역시 추억은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게 제맛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빛도 살짝 바래가면서 말이다.


요즘은 영상매체의 파급력이 워낙 크고, 감각을 자극하며 빠르게 진행되는 콘텐츠들이 많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아이답지 않고 너무 세련되어지는 건 아닌지, 그리고 오감으로 느끼는 추억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걱정해 본다.

또한 대부분 한 자녀이다 보니 갖고 싶은 건 뭐든 가질 수 있고, 디자인이나 품질 역시 뛰어난 물건들로 넘쳐난다.

뭔가 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아야 더 애착이 가고, 지나고 나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좋은 물건을 부족함 없이 주는 것도 너무나 값진 일이지만, 평생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명장면 같은 추억거리 하나쯤 가슴속에 꼭 쥐여주는 것 또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제나 두고두고 꺼내 보고, 또 이렇게 이야깃거리로 풀어낼 수 있는 버려지거나 소멸하지 않는 그 무엇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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