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침해하고 침해받는 관계일 뿐인가...
최근 우리 사회에는 타인을 경계하고 거부하는 배타적인 정서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뜻밖에 신문 사설풍의 오프닝을 해버렸다.)
서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으며,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말을 건넨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고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난감한 경우가 되기도 한다. 지나가다 부딪치거나 발을 밟는 등의 사소한 충돌에도 이유나 주변 상황을 생각하기 이전에 화부터 내고 서로 잘못을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언제나 좁고 복잡한 공간들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공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예민함의 결과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이다.
이런 특성들은 우리의 민족성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인 데다 국토는 좁고, 위로는 대륙이, 아래로는 바다가 자리하고 있어 고립과 간섭, 두 가지 측면의 위험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외세로부터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아온 민족이다. 게다가 좁은 국토마저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실질적으로 거주하고 이동할 수 있는 실제 면적은 눈물겹도록 협소하다. 그뿐인가 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사회 인프라로 인해 인구밀도는 거의 살인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어찌 보면 배타적이고 극심한 경쟁심을 갖고 사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 예로, 낮시간에 서울 도심의 명동이나 종로 등 중심가를 오가는 유동인구를 콩나물시루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런 초고밀도의 유동인구는 땅덩이가 넓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전쟁이나 나야 볼 수 있는 희귀한 광경이라고 까지 할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게 일상이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대중교통이나 극심한 도로 정체도 지옥에 비유될 만큼 심각한 수준이지 않은가.
또한 밀집된 건축물들로 인한 조망권, 일조권, 소음 등의 갈등요인이 도처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런 주거생활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회진출과 생계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나아야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만 한다는 사회분위기까지 더해져 서로를 생존경쟁의 대상으로만 보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웃이란 의미가 퇴색된지도 오래다. 오죽하면 주로 개인단위로 생활하며 서로 언제 입주했고 언제 떠나는지도 모르는 오피스텔 등의 주거시설에서는 '서로 인사를 안 하는 게 예의'라는 말까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곤 한다. 집 앞에 비어있는 공간에 누가 잠시라도 주차를 하게 되면 가차 없이 견인이 되게 신고를 하거나 심지어 차를 손상시키는 일도 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아무도 타지 않은 채로 열렸으면 하고 바란다.
특히 혼잡한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이런 성향은 극에 달한다. 자동차는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기껏해야 한두 평 정도 되는 공간 안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각각 자기만의 갈길을 간다. 더구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불안요소도 함께... 그러니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용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끼어들기를 하거나 운전미숙으로 위험한 상황을 만들거나 통행을 지체하게 될 경우, 상대가 누가 되었건 간에 평소에는 입에 담기도 부담스러운 욕설을 퍼붓는다. 나의 경로를 가로막은 상대에게 나만의 ‘작은 공간’ 속에서 이기심과 흥분에 가득 찬 공격 아닌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나 한정된 공간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은 사라지고 불신과 증오의 적대감만 키우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안타까워진다.
타인은 나에게 그저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나 골칫거리, 또는 밟고 올라서야 하는 생존경쟁의 상대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면 자신도 결국 남에게는 그런 증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겠다.
우리 민족에게는 위에 말한 불리한 조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이라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남을 더 배려하고, 아끼고, 그리워하는 그런 따뜻한 마음 말이다.
많은 군중과 인파를 보면서 ‘지옥’이나 ‘천적’을 떠올리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동반자나 이웃이라는 흐뭇함을 공유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사족
이 글은 사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이라 어디를 가도 한산하고 업장이나 매장 안에서도 띄어 앉거나 이용에 제한을 받기도 하죠. 제가 지금 시점에서 굳이 이 글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이 상황이 끝나고 다시 예전처럼 우리가 물리적, 공간적으로 혼잡을 겪게 될 때, 지금의 경험을 되새겨 서로가 부대끼며 사는 게 그래도 행복이라는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우리 다시 복작거리며 살게 되더라도,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던 때도 있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