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하늘, 지평선 위아래의 오묘한 공존

by 감성조작단

언젠가부터 해지는 모습을 보지 않는다.

나는 해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해지는 모습이란 노을이 지기 전부터 어두워진 직후까지의 하늘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20대 초반 까지만 해도 나는 늘 해지는 모습에 심취해 늦은 오후와 저녁시간을 즐겼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하늘은 점점 오묘하고 멋진 색을 띠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하늘과 섞이면서 꺼져가는지, 지는 태양은 정말 신비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 지는 해의 아랫부분은 점점 어둠에 잠기지만 태양을 넘어 위쪽은 여전히 대낮같이 밝고 금빛으로 빛나는 하늘과 구름이 있었다. 같은 시간에 어둠과 빛이 하늘이라는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지는 하늘, 지평선 위아래의 오묘한 공존' 나는 그 경계선상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망상을 하곤 했었다. 도대체 저 위쪽, 그리고 저 너머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해지는 하늘을 마음 놓고 본지가 까마득히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물론 주거환경의 변화도 한몫을 했으리라.

사춘기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우연찮게 13층에서 16층까지 항상 고층에서 살았었다.

특히나 2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마침 서쪽하늘 쪽이 훤히 보일 정도로 전망이 탁 트이고 가려진 게 없는 창이 있는 집에 살았다. 20대 초반 어느 가을날, 그 창 앞에 서서 유난히 멋지게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어머니가 준비하시는 저녁식사의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묘한 설렘을 느끼던 포근한 그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에는 해가 저물기 전부터 해가 저물고 난 후 어두워질 때까지 30분 정도를 다른 생각 없이 하늘만 보면서 감탄하고 거기에 빠져있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다. 밖에 있을 때는 하늘을 봐야 하는 이유도 모를 정도로 뭐가 바쁘고 급한지 그저 볼일만 보고 일정에만 집중한다. 실내에 있을 때에도 주변의 높은 건물들에 가려져 해가 지는 멋진 모습을 볼 정도의 하늘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작 하늘을 가리는 건 주변의 건물들이나 하늘 한번 쳐다볼 짬도 없이 빡빡한 스케줄이 아니다. 그건 바로 내 마음속에 넓은 하늘을 바라 볼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가끔 타이밍이 맞아 해지는 하늘을 보게 되면 그때의 향수를 느끼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인생이 낭만과 망상만으로는 살아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버린 지금... 더 이상 그때의 신비롭고 아름답던 하늘은 보이지가 않는다.


이제 내겐 마음 놓고 하늘을 바라볼 탁 트인 공간이나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혹여 하늘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에 우연히 놓이게 되더라도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인식하게 되면 아마 "내가 지금 한심하게 넋 놓고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저 사회에 적응해서 남들처럼 일상과 생계에만 집중해서 사는 게 진정한 인생의 가치일까?

정말 부정하고 싶지만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 도인이 되지 않는 이상 낭만이나 추억, 내면의 가치보다는 실적이나 성과, 수익이 현실적으로는 더 가치 있는 것 일수도 있다. 또한 그런 걸 거부하면 당장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게 이 사회이다. 더구나 그럴 경우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들까지 고통을 받게 되니 모두들 그렇게 그저 받아들이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건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것들을 거부할 용기가 없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그저 현대사회에 물든 한 구성원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그런 자본주의적 가치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그 이전에 본질적으로 더 소중하고 절실한 게 있다는 미련은 떨쳐버릴 수 없다.

마치 '해지는 하늘, 지평선 위아래의 오묘한 공존'과 같이 동시에 두 가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저 떨궈진 우리의 시선에 맞춰 아랫부분의 어두운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만 넓고 높게 바라보면 황금빛 하늘과 구름이 그 위를 비추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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