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턴가 단순함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그동안 단순함에 관하여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함은 무엇이며 갑자기 어떤 이유로 나에게 단순함이 편안함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일상생활의 한 예로 친구로부터 약속이 생겨 미리 약속 장소에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약속시간이 다가올 때쯤 친구에게 피치 못한 사정으로 다음에 봐야 할 것 같다며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는 짜증이 나겠지만 이내 알겠다고 하고 돌아선다. 그 친구에게 쓴소리를 해봤자 당장에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건다. 그 시간에 나를 만나줄 다른 이를 향하여. 몇몇의 친구와 연락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만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선다. 별다른 불평 없이.
간략하게 말하면 이런 식이다. 일상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박스들의 나열이라고 했을 때 그중 하나의 박스가 불량이 되어 빠졌을 경우 특별히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에게 단순함이란 이런 식이다.
이번엔 옷들에 관해서다. 나는 평소에 별다른 기준 없이 옷을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옷장을 열고 찬찬히 바라보니 나름의 규칙이 들어왔다. 옷에 글씨가 쓰여 있다든지 그림이나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는 옷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전부 민무늬의 옷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을. 무언가 화려하고 이런저런 패턴이 들어간 옷은 나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겠다는 걸 알아서 일까? 아니면 이러한 스타일이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하다고 생각해서일까?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복잡한 디자인의 옷들을 평상복으로 입게 된다는 경우는 상상만 해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단순함은 옷장에서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상황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찰나의 시간을 줄이고자 가장 짧은 동선으로 이동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 환승의 경우 환승통로와 가까운 객차의 번호를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내려서부터 환승하기까지의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름의 방향을 계산하여 최단거리로 빠르게 환승하는 곳까지 다가간다. 이건 뭐 거의 병적이다.
또한 어떠한 결정을 할 경우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중고 노트북 구매를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던 적이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을 꼼꼼히 비교해보고 여러 제품 중 선택을 해야 하는 데 한 번의 검색으로 사용 후기가 좋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며칠 후 도착한 상품은 불만족스러웠지만 환불받기까지의 절차가 번거로워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이 정도면 괜찮다며 둘러댔지만 불편한 노트북을 사용하셔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 잠을 설쳤다. 난 이렇게 잠깐 귀찮으면 되는 일을 단순하게 망처 버린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나에게만큼은 단순함이 최선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 나쁜 일을 털어버리거나 화려하지 않은 옷들을 선호하는 취향은 괜찮다 치더라도 공공장소에서의 서두름에서 다른 사람들이 느낄 불편함이나 성급한 판단과 이기심으로 어머니가 겪어야 했을 수고로움은 다시 읽어봐도 문제가 있다. 단순함이 편안함으로 다가와 있는 현재의 나. 다시 바꾸어 말하면 ‘귀찮은 것이 싫은 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 평소 스스로를 계획적이고 성실하며 남들에게 배려 심을 가지려 노력한다라고 생각했건만 왠지 속내를 들켜버린 기분이다.
단순하고 심플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불편이 따르더라도 분명 그래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