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더 살아야 하는 이유

수용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by 민들레



종합병원에서 MRI 촬영을 하기 위해 커다란 통속에 누워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재검을 해보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내 혈관으로 조영제가 투입되었다.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몸 안으로 번지자 당혹감이 훅 올라오더니 두려움 같은 것이 목 안에 걸렸다.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닌가, 괜한 걱정을 끼칠까 봐 재검받는다는 얘기를 가족에게 안 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죽더라도 가족이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이런 황당하고 비약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동안 촬영이 끝났다.

병원을 나오며 MRI 촬영하다 죽었다는 사람 못 들어봤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실소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후유증으로 열감과 피로감이 진통제를 복용해도 지속되자 은근히 두려웠다. 접종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보도되었으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남아있었다. 어쩌면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내 남동생으로 인한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나의 그러한 심리적 현상을 느낄 때마다 매우 큰 모순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 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서 지금은 죽을 수 없다는 거지.” 한 때 유행했던 노랫말 같은 말을 읊조리며 친구들과 웃곤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아직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모차르트 음악을 더 이상 못 듣는 것이다”라는 말로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그 어떤 아쉬움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준비를 잘해야만 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아이들도 각자 가정을 꾸려 알아서들 잘 살고 있다. 걸리는 게 있다면 남편이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내가 남편보다 오래 사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앞선 본질적인 문제가 내 앞에 놓여있다. 남아 있는 나의 생을 물 흐르듯 부드럽고 편안하게, 그리고 가볍게 사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부드럽고 가볍다는 것은 삶에 대한 초연함을 말한다.


삶의 조건들과도 크게 구애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며, 언제든 마음의 평정심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마음의 균형이란 부정적 감정에 몰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주관적 판단에 의한 타인 비난이나 원망, 또는 자만심 같은 불선한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바람은 많았으나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부정적인 마음은 불선업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마음의 불선업을 제거해야 함은 물론 선업을 실제로 쌓아야 한다. 가족과 내게 집중되었던 관심을 타인에게 더 돌려야 한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행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죽음에 대한 나의 준비이다. 그동안 나의 삶은 선업보다는 불선업이 많았다. 저울에 달면 선업의 무게가 훨씬 가벼울 것 같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선업의 무게가 더 묵직하도록 살고 싶다. 사실 나는 윤회를 멈추고 싶다. 그러나 완전한 해탈을 하지 않는 이상 윤회는 피할 수 없으므로 다음 생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선업이 많을수록 해탈의 길에도 가까워진다고 한다. 나는 한참 모자라기에 아직은 더 살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다행히 촬영 결과는 이상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무튼 생각보다 일직 나의 생과 작별하는 날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선업을 키우며 수용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남은 생을 채워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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