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의식에 대하여
이른 오전 전철역 입구였다. 4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노숙자 차림의 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의 앞엔 푸른색 플라스틱 작은 바구니에 검은색 흰색 양말 딱 두 켤레가 손님을 기다리며 담겨있었다. 빈둥거리며 남에게 적선만을 바라기보다 최소한의 노동이라도 하여 스스로를 돌보려는 그가 가상하고 또한 안쓰러웠다. 적선을 하든 양말을 사주든 만원 미만의 금액이면 가능할 텐데 오늘따라 지갑에 잔돈이 없음을 깨닫고 매우 속상했다. 강한 연민심이 올라옴을 느끼며 잠시 동안 멀리서 그를 지켜보았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생해 보려는 처절한 노력을 하는 듯하여 고마웠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바닥에서 먹는 컵라면과, 바구니 속의 볼품없는 양말은 다시 살아보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며칠 뒤 이른 오후였다. 전철역 입구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지난번과는 달리 여러 켤레의 양말이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했다. 사람들 도움 덕에 물건을 좀 더 떼어올 수 있는 현찰이 생겼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의 입에 담배가 물려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주병을 앞에 놓고 종이컵에 술을 연신 따라 마셨다. 담배와 술잔을 번갈아가며 입에 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안타까움이 씻은 듯 사라졌다. 현재 그의 상태는 다름 아닌 그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저 모습일 거라는 판단에 그를 향했던 연민이 식어버렸다. 돈이 생기는 즉시 술 담배와 맞바꿀 그의 물건을 사줄 마음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이도 젊은 사람이 이게 지금 무슨 꼴이냐? 평생 그렇게 살 거니?’
며칠이 지나도록 웬일인지 그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내면보다 타인 또는 외부세계를 보는 데 익숙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의 주관적 판단과 분별 의식을 작동시킨다는 것을 말이다. 짧은 시간 현재 그의 외형적 상태만을 보고서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성급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가 전철 입구에 쭈그려 앉아 사람들 시선도 개의치 않은 채 술과 담배를 거듭하게 되기까지,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로 다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 어찌 됐건 내가 모르는 사람의 험난했을 인생 여정을 상상하며 유추해 볼 마음은 없었다. 그를 통해서 내 마음속 움직임을 관찰하였다.
요점은, 누구든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적 견해나 차별적 관점을 가져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인생 저런 인생, 모든 인생은 의미가 있으며 의미가 없기도 하다. 또한 아름답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보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 가치가 다를 터이다. 내가 잊지 말아야 할 핵심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의식들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전철역 입구의 그를 보면서 연민심을 일으킨 것도,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도 누가 시킨 게 아닌 순전히 나 자신이 일으킨 감정이며 생각들이다. 외부세계는 그대로다. 나의 내면이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며 온갖 형태와 색깔을 만들어 낼 뿐이다. 내가 나를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타인에 대한 이해도 좀 더 가능할 터이며 세상을 위해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