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간단한 이 한 문장 속에 그의 인생 전체가 담겨있었다. 한 사람이 짧은 시간에 펼쳐 놓았던 삶의 여정이 나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현재는 멈춘 상태지만 나는 서울시 소속 심리상담사로 근로현장에 파견 상담을 나갔었다. 1년 전인 당시의 사례 하나를 가져오려고 한다.
그는 흙 묻은 작업복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칼, 작은 체구를 가진 50대 남자였다. 짧은 머리칼에 뿌옇게 앉은 먼지로 인해 얼굴이 더 회색빛으로 보였다. 그는 평생 벽돌 쌓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젊을 때는 하루에 5천 장도 쌓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하루에 천오백, 이천 장 정도밖에 못 쌓습니다.”
감정의 동요 없이 그는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벽돌 한 장 쌓을 때마다 허리를 반복적으로 구부렸다 폈다 해야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수입이 적어요. MB 정권 때 대출해서 집을 샀는데 대출이자가 많이 나갑니다. 집이 팔리지도 않지만 팔리더라도 대출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안 되어 전세 가기도 어렵습니다. 대출이자 내면서 그냥 살 수밖에 없는 거죠.”
팍팍한 그의 생활이 상상되었다.
“평생 일만 하다 죽으라는 팔잡니다. 일을 아무리 해도 사는 건 똑같아요. 우리같이 밑바닥 인생은 국가에서 국민연금, 의료보험도 안 들어줍니다. 일용직이기 때문이에요. 일하는 현장은 멀고 교통편이 없어서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하기도 어렵습니다. 수입은 적은데 들어가는 돈은 더 많이 필요해요.”
그를 통해 일용직 근로자의 고충을 다시 한번 절절히 공감했다.
“제일 어려운 점은 일하고도 노임을 제때에 못 받을 때입니다. 카드 값 대출비 같은 것들은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나가는데 노임을 못 받으면 아주 낭패스러워요. 돈을 많이 주느냐보다 제날짜에 주면 그것만도 감사한 거죠.”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이 내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하는지 몰랐다.
“우리 같은 사람이 사는 게 다 그래요. 그렇다는 얘길 하는 겁니다. 제가 말을 많이 하지요?”
문득 생각난다는 듯이 그가 나를 쳐다봤다.
“아닙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하세요. 참 많이 힘드실 거 같아요.”
나는 뭔지 모르게 미안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쌓는 벽돌 개수가 수입과 직결되니까 쉬는 시간도 아낍니다.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에요. 담배를 못 피우게 담뱃값을 인상했다고 하는데 서민들만 더 힘들게 하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요. 하루 종일 일하다가 쉬면서 담배 한 대 피우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면, 사는 맛이 뭐 있겠습니까.”
“네에... 그러시겠어요.”
"담뱃값 인상하는 높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이일(벽돌 쌓는 일)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담배 안 피울 수 있는지”
그가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그의 생활이 아픔처럼 묻어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하루살이 인생(일일 노무자라는 뜻)이에요. 그렇지만 어려운 순간도 조금 지나면 다 괜찮아집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의 얼굴이 살짝 밝아진 듯했지만, 역시 덤덤한 표정이었다.
“팔자가 그런 걸요 뭐. 평생 일만 하다 죽으라는....... ”
그런 그의 태도는 삶이 주는 익숙한 애환에서 오는 김 빠진 좌절이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잘 살아오셨구요......”
나의 이런 멘트가 그의 마음에 얼마나 가닿을까.
40년 동안 육신을 도구 삼아 일만 하며 살아왔지만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어려움이 더해졌고 노동의 양도 줄지 않았다. 게다가 몸이 절단 나서 더 이상 현장에 못 나갈 때까지 노동을 멈출 수 없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의 노동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뭐든 뾰족한 수를 찾고 싶은 심정으로 내가 물었다.
“그래도 사는 낙이라고 할까, 즐거울 때가 혹시 있으시다면요? ”
“일 마치고 초저녁에 집에서 하는 반주 한 잔이 유일한 낙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집사람이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고.”
“네? 부인이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드세요? ”
“그럼요. 안 주면 안 먹죠.”
그는 여전히 웃음을 띠었지만 나는 조금 씁쓸했다. 반주만이라도 편히 마시기를 바랐다.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힐링 아닌가.
“안 주셔도... 직접 드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는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1주일에 두세 번은 먹습니다.”
그의 선량한 웃음에서 빛이 났다. 나도 같이 웃었다.
상담을 마고서 그는 푹 쉰 기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그럴듯한 희망도 비전도 꿈꿀 수 없는, 지루하고 암담했을 50여 년의 세월을 어떻게든 살아온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가 고마웠다. 오늘 밤도 일을 마친 그가 행복한 반주 한 잔을 곁들이는 상상을 했다. 담배 한 개비, 반주 한 잔의 의미가 그토록 깊을 수 있음을 그를 통해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