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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위험에 빠졌어요!

by 민들레

까치 두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한가한 자태로 앉아있다. 이 까치들이 그날의 그 까치인지는 알 수 없다. 그 까치 가족들은 지금은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겠지. 나는 집 앞 놀이터 근처를 지날 때면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나 까치들을 눈으로 찾곤 한다. 위기에 처한 까치들이 요란하게 울부짖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까치 두세 마리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며 주변이 떠나가도록 깍깍깍 울어댔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까치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까치를 입에 문 채 화단의 영산홍 꽃나무 사잇길로 들어갔다. 나는 지름길로 돌아 고양이를 막아서며 이놈 하고 엄포를 놓았다. 그제야 고양이가 대롱대롱 입에 물고 있던 까치를 팽개치고 달아났다.


고양이에게서 놓여난 까치는 푸드덕 거리며 날아오르려다가 곤두박질쳤다. 죽었을까 걱정했는데 뜻밖에 살아있었다. 좀 전보다 더 많은 까치 가족이 몰려와 그야말로 난리였다. 처음엔 공포의 울부짖음이었다면 지금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제 식구를 보고 안도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듯했다.


순식간에 고양이 밥이 될 뻔했던 까치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다행히 목을 물리지 않은 까닭이다. 대신 왼쪽 날개에 꽤 큰 상처를 입었다. 성인 까치였으나, 마치 막 이소를 시작한 어린 새끼처럼 조금 날다가 바닥에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겁에 질린 채 우왕좌왕 정신을 못 차리는 다친 까치 주변으로 몰려온 4.5마리의 가족 까치들이 “큰일 났다. 어쩌면 좋아, 많이 다쳤네, 살아서 다행이다!” 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까치가족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다친 까치의 엄마인지 연인인지 한 마리가 유독 다가와서 주변을 맴돌며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 까치는 살아날 운명이었다. 첫째는 고양이에게 목을 물리지 않았고, 두 번째는 위기의 순간 내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우연히 만난 이웃분의 좀 길다 싶은 얘기를 듣느라고 시간을 지체했었다. 그리고 마트에도 들렀다.


만일 내가 이웃 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는 마트에 들르지 않았다면 시간상 고양이가 까치를 낚아챈 그 순간을 놓쳤을 것이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까치의 생명을 구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문득 영화 ‘아호, 나의 아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순간을 잡고 길을 정해라’ 영화 속에 여러 번 나오는 대사다. 물론 까치를 구해준 그 순간을 내가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인생이란 딱 맞는 순간을 잡기도 어려우며, 잡은 그 순간의 선택이 다 옳다는 보장도 없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순간을 잡고 길을 정해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그 자신의 삶에서의 선택들이 옳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얘기가 옆으로 흘렀다. 아무튼 까치의 생명의 은인이 된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날 이후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까치를 만나면 저놈들이 그놈일까 하며 쳐다보곤 한다.

동양에서 까치는 여러 설화와 세시풍속에서 친숙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새다. ‘치악산 까치’의 유래담은 까치 보은의 대표적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오작교’ 설화에는 까치의 착한 희생이 나타나 있다. 음력 칠월 칠석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딱 한 번 만나는 날이다. 그런데 둘 사이에 은하수가 가로놓여 있다. 이것을 안타까이 여긴 까치들이 서로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어서 두 남녀가 건너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농촌에서는 까치가 간혹 파종한 씨앗을 파먹는가 하면, 나무가 부족한 도시의 전신주에 집을 짓기도 해서 주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TV 뉴스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까치와 관련되어 전승되는 내용은 대부분 긍정적인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사실인지 모르지만 까치는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새라고도 한다.


그날 날개를 다친 까치는 가족의 보호 아래 지금쯤 거의 회복되었을 것이다. 까치들이 내 얼굴을 기억 못 해도 좋다. 하마터면 큰 슬픔에 빠질 번한 까치가족을 위험에서 구해준 일이 아직도 마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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