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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다니기

by 민들레

꽤 오래전 일이다. 낡은 샌들을 신고 근처의 재래시장에 갔다. 한쪽 샌들 끈이 시원찮긴 했지만 가는 도중에 아예 빠져버릴 줄은 몰랐다. 빠진 끈이 덜렁거리는 샌들을 발에 꿸 수가 없었다. 한쪽은 신고 한쪽은 벗어야 할 난감한 상황이었다. 멀쩡한 나머지 한쪽 샌들도 마저 벗었다. 차라리 두 발을 다 벗고 걷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땅을 밟는 순간, 무겁게 껴입었던 옷을 몽땅 벗어버린 것처럼 가벼움을 느꼈다. 그때 무슨 이유였던지 스트레스로 아마 가슴이 답답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절호의 기회라는 듯, 벗은 샌들을 손에 들고 맨발로 태연히 걸었다. 사람들 시선이 의식되었지만 신발 끈이 끊어지지 않고서야, 내 주변머리로 대로를 맨발로 걸어 다닐 용기란 가당키나 할 것인가. 맨발의 자유를 처음 경험했던 때는 인도 여행에서였다. 인도는 사원 내에 들어가려면 때마다 신발을 벗어야 했다. 나를 옥죄는 거추장스러운 무엇을 잘라버린 듯한, 그때의 홀가분함을 떠올리며 맨발인 채 야채를 사려는 나를 본 가게 아주머니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니 왜 신발을 안 신고 다녀요?”

나는 짐짓 난처하다는 듯 대답했다.

“신발 끈이 끊어졌는데 신발 가게가 없네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신발 가게는 여기서 멀지 않다며 아주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고맙다고 말했지만, 신발 가게를 찾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신발 가게가 내 눈에 띠지 않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볼일을 보았다. 그때, 과일가게 아저씨가 나를 위아래로 빤히 쳐다보더니,

“아주머니는 왜 맨발로 다니세요?” 했다.

“편해서요.”

나는 조금 전보다 대담해져서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왠지 후련했다. 그 순간만큼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 바에야, 눈치 볼 일도 없었다. 뒤통수에 과일가게 아저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생긴 건 멀쩡한데 맛이 갔나? 별 사람 다 있구먼.’ 그런 말을 흘렸을 것 같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이럴 때 시장 한 복판을 맨발로 다니지 않으면 언제 기회가 있겠어’ 하는 생각을 하며 만족해했던 것 같다. 최근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등의 영향으로 맨발로 걷기는 흔한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도심에서 맨발인 채 돌아다닌다는 것은 정말 낯선 일이었다.


그때의 맨발로 걷기는 아마 심리적으로 뭔가 꽉 막혀있던 상태에서의 작은 일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탈할 용기도 없던 내게 뜻밖에 신발 끈이 끊어져 줌으로써, 의도치 않은 비상식 같은 새로운 경험에 기뻤다고 할까. 어떤 막막함에 직면한 상태로 숨을 쉬기가 어렵다면, 누구든 무의식적인 숨구멍을 만들어낸다. 잠시였지만 맨발로 시장을 활보했던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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