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고독

by 민들레

어머! 너 어떻게 여기에 피어있니?

등산을 하던 나는 바위틈에 피어있는 진달래꽃 한 송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사월 중순의 산 빛깔은 예뻤다. 연초록 나뭇잎들은 생기를 더해갔고 이따금 만나는 산매화는 설레는 가슴을 살며시 내보이며 다소곳했다. 제철 만난 진달래꽃들도 곳곳에서 무리를 지은 채 핑크빛 미소를 건넸다. 봄이 무르익는 이런 계절은 나무와 꽃들도 사람도 어떤 기쁜 일이 생길 듯한 기대감으로 부푼 마음이 되었다. 그런 기분을 만끽하며 유쾌한 산행을 하던 중 특별한 진달래꽃을 만난 것이다.



단단한 바위 위에 작고 가는 줄기 한 개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예쁜 얼굴의 한 송이 진달래였다. 거대한 기암괴석의 한 귀퉁이다. 나는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듯 허리를 굽혀 진달래꽃을 바라봤다. 하고많은 장소를 두고 어찌하여 너는 여기에 홀로 피어있는 거니? 활짝 핀 진달래가 조용히 웃었다.



나는 이곳이 좋아요.

봐요. 햇살이 금빛 가루로 내 얼굴에 화장을 해줘요.

아기바람이 자주 와서 친구해 주고요.

달디 단 봄비가 내리면 촉촉한 세수를 하고 빗물의 향기를 맡아요.

까만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이 나를 위해 하늘 길을 서둘러 와 준답니다.

밤을 위해 존재하는 달님은 나의 가장 다정한 말벗이지요.

소나무 가지 위로 낮게 내려온 하얀 반달은 나를 아득한 신화의 세계로 데려갑니다.

세상을 고요한 침묵으로 잠재우는 품 넓은 보름달은 나를 사랑으로 안아주어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이 내 곁에, 이렇게 나를 보고 있잖아요.




나는 어느새 이 꽃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외로울 때가 있지 않을까?


외로움은 늘 있지요. 외로움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존재 차제가 외로움이니까요. 하지만 외로움은 고귀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울하지 않을 때 말이죠. 아, 외로움이란 단어를 고독으로 바꾸면 좋겠군요.

외로움이 크면 절망에 이를 수도 있지만 긍정적 고독은 존재를 성숙되게 합니다. 외로운 사람은 많아도 진정으로 고독한 사람은 많지 않아요. 외로움을 포용하면 고독으로 승화되지요. 고독이란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기쁨도 슬픔도 자신 안에서 녹아 공기로 변화하게 하는 힘. 나약한 사람은 고독과 함께 하는 힘이 부족해요. 사실은 고독은 고귀한 정신적 가치예요.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도 깊은 고독 속에서 탄생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창조성은 고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고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외로움은 고통이지만 외로움을 뛰어넘은 고독은 정신적 자유다. 자유의지가 개입된 선택적 고독은 내적 충만감이다. 내가 안쓰러움으로 바라봤던 진달래꽃이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로 나를 매료시켰다.



나태주 시인은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라고 표현했다. 또 초의선사는 차를 ‘홀로 앉아 마시면 신비롭다’ 고 하였다. 세 사람, 두 사람이 차를 함께 마시는 시간도 좋지만 혼자서 차를 마실 때의 시간을 그는 더욱 찬미했다. 초의선사도 선택 고독을 즐겼다는 뜻이다.



4월 한낮의 그윽한 햇살이 고인 작은 꽃잎은 볼수록 고왔다. 모파상의 말처럼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 란 이치를 이 꽃은 터득한 듯했다. 혼자서 외따로 피어있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진달래는 사랑의 기쁨, 절제 이렇게 상반된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듯 무리 지어 핀 다른 꽃들과 달리, 이 한송이 진달래는 알맞은 인내와 절제를 지녔을 터이다. 거대한 바위산을 바람막이 삼아 적요한 모습으로 홀로 핀 진달래꽃 한 송이가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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