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에
웬일인지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특별히 그럴 만한 일은 없는데, 오후에 커피를 많이 마셨나.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사실 젊을 때부터 잠을 보약으로 삼던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수면시간이 줄지 않았다. 새벽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내 또래 친구들 말을 들으면 부럽고 여전히 잠 많은 내가 못마땅했다. 일직 시작하는 하루는 그만큼의 시간을 더 활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면시간은 젊은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는데 달라진 것이 있다. 언제부턴가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 밤 숙면에 지장이 있다는 것. 또 커피와 상관없이 간혹 이유 없이 새벽 한 두 시까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다는 것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젯밤 늦게 자리에 누우며 잠을 청했지만 잠이란 녀석은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다음 날에 약에 취한 닭처럼 비실댈 일이 걱정되긴 했으나, 한편으로 시간이 거저 생긴 거 같아 만족했다.
거실로 나온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물 끓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채운다. 나는 커피 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맛과 향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마셨다. 가을 나뭇잎 향기를 닮은 쌉싸하고 고소한 커피 향이 따뜻함과 함께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으로 번진다.
커피를 반쯤 마신 나는 몸을 일으켜 책장 옆으로 갔다. 열 지어 서있는 책들 가운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꺼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오랜 시간 책장 귀퉁이에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책을 언제 구입했는지, 읽기나 했는지 기억도 없다. ‘홍신문화사’에서 출판한 책으로 초판 발행연도를 보니 1990년이다. 기억이 안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잘 알려진 책이어서 재목 정도는 들어본 사람이 많을 줄 안다. 나 역시 ‘사랑의 기술’에 대해 기술해 놓은 책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책을 펼쳐보니 밑줄을 꽤 그어놓은 것으로 봐서 나름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재미가 무 재미여서 지루함을 견디며 읽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밑줄 그어진 부분을 옮겨본다.
“삶이 하나의 기술인 것과 같이 사랑도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음악이나 예술, 건축, 혹은 의학이나 공학의 기술 등과 같은 어떤 다른 기술을 습득하고자 할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랑을 배우고 싶다면, 나는 모든 상황에서 객관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며, 내가 객관적이지 못한 생황에서는 민감해져야 한다.”
이 전언에 공감한다. 누구든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사자와 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사자와 소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들은 사랑하는 상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사자는 소에게 맛있는 고기를, 소는 사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풀을 최선을 다해 마련해 주었다. 둘은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처음엔 괴로움을 참고 먹어주었으나 마침내 한계에 이르렀다. 그들은 헤어지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말했다. “난 최선을 다했어.”
이 우화는 거의 모든 대인관계의 패턴을 단적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어도 받는 사람이 반기지 않으면 그 선물은 가치가 없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을 주어야 한다. 사랑이란 나 자신에게가 아닌 상대에게 민감해야 하며,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프롬이 말한 객관성 추구이며 사랑의 기술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아무리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역지사지를 한다 해도 그가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그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도 ‘좋다’ ‘나쁘다’의 판단을 내리기보다 ‘미루어 짐작’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사실 대인관계의 원리를 제법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부끄럽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해왔는가 말이다. 남편과 아이들에겐 더 미안하다.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기에 앞서 내 입장 내 생각 내 감정을 더 중요시한 적도 많을 터이다. 그땐 몰랐었다고 변명을 해봐야 이미 늦었다.
사랑의 기술을 음악이나 예술을 배우는 것처럼 미리 배웠더라면 나았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 습득 수준을 넘어 사람에 대한 이해, 통찰, 너그러움, 지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따뜻함이 전제될 때,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역지사지가 쉬워질 터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그 사람이 성숙하고 익어진 다음에야 사랑의 기술에 있어서도 좀 더 포용적이지 않을까 한다.
<사랑의 기술>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닌 부모 자식 형제, 신에 대한 사랑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지 않아서 내가 핵심을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사랑의 기술’은 모든 대인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다시 한번 꺼내봄으로써 상기하게 되었다.
창밖 어둠이 옅어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넘었다. 모처럼 덤으로 생긴 시간 덕분에 에리히 프롬과 함께 상념에 빠질 수 있어 좋았다. 불면으로 인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