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이름을 한 번 더 불러 볼래'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건너려고 파란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서있다. 맞은편에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글씨가 적힌 키 낮은 안내석이 보인다. 그 위를 올려다보니 푸르디푸른 은행잎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여름의 푸른 은행나무 잎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올려다본다. 문득,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어느 날을 상상한다.
나는 병상에 누워있다. 창밖은 지금처럼 약간 무더울지 모른다. 나는 창문 너머에서 바람에 살랑이는 푸른 나뭇잎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겠지.
“조금 젊고 건강했을 때, 길을 건너려고 서 있었는데 푸른 은행잎이 정말 보기 좋았어. 노랗게 물든 가을 은행잎이 더 곱긴 하지만 여름을 풍미하는 푸른 은행잎도 참 아름답거든. 그런데 그땐 은행나무를 건너다보며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것 자체가 소중한 순간이란 걸 몰랐던 거야······.”
그렇다. 생의 마지막 숨결을 몰아쉬며 지나온 시간들의 소중함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을 덜 후회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한다. 순간에 깨어있는 내가 된다. 은행나무 뒤쪽을 바라본다. 고만고만한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있다. 둥그런 화분들, 오가는 사람 몇몇, 사방에 우뚝 솟은 빌딩들. 나는 하나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사물들을 하나하나 관찰한다. 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해야 하리라.
“생의 순간순간들을 온몸으로 알았고 그것들이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므로 후회는 남지 않는다”
그때가 좋았지, 돌아보면 아쉬운 것들이 너무 많아, 이런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볼래......"
이승윤 가수의 노래 '달이 참 예쁘다고'의 가사를 마음속으로 음미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