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가세요

by 민들레

지방에서 홀로 계시던 어머니를 자녀들 근처로 모시려는 계획을 세우고 그동안 어머니가 사시던 아파트를 매도했다. 이사하기 하루 전날 준비를 도우려고 여동생과 함께 내려갔다. 어머니 집에 도착해서 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갔는데 안방 문이 3분의 1쯤 열려있고 안에서 얘기 소리가 들렸다. 80대 중반인 어머니는 겨울이면 난방비를 아끼려고 거실 보일러는 잘 틀리 않았고 주로 안방에서 생활하셨다.


방에 들어가려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웬 할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은 어머니의 소파 겸 침대에 다리를 걸치고 않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와 달리 어머니와 그 할아버지는 태연했고, 마치 집안 어른이라도 되듯이 그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고도 침대에 그대로 앉은 채 엉덩이를 들썩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은 우리를 더 기함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에 이사 올 분인데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아니, 어딜 주무시라고 해요?”

난생처음 본 사람을 집에 묵게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태평하셨다.

“작은 방에 불 넣으면 되니까 주무시라고 하면 된다. 이 양반 지금 사는 곳이 멀어서 내일 잔금 치르려고 미리 올라왔는데, 여관에서 자야 한다니 우리 집에서 주무시게 하자.”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그 할아버지 태도는 더 이해가 안 갔다. 동생과 나의 황당한 표정에도 개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사하기 전 집을 한 번 더 둘러보려고 왔다는 분이 여전히 안방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대놓고 눈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옷 갈아입어야겠어요.” “피곤해서 누워야겠네.”

말하면서 배짱 두꺼운 그분을 떠밀 듯이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방 밖으로 나갔을 뿐 그분은 여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공연히 베란다며 천장 등을 살피는 척하며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별수 없이 속이 뻔히 보이는 말로 채근했다.

“할아버지도 저희 집에서 주무시려면 불편하실 거예요. 시내에서 방 잡고 편히 주무시는 게 낮죠.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갈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앞질러 배웅인사를 했다.


어머니 집에 있는 꿀단지를 마음에 두기라도 한 사람처럼 나가기 싫어하는 그분을 억지로 돌려보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오늘 밤 자고 가도 좋다는 약속을 이미 받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동생과 내가 워낙 강하게 고개를 저었으므로 어머니도 우리를 말리지 못한 것이다. 그 할아버지 입장으로는 하룻밤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인정머리 없는 딸내미들 때문에 쫓겨난 셈이었다. 그분이 나가자 동생과 나는 이 상황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돌려보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 영감이 형편이 어려운가 보더라. 여관비라도 아껴야지. 우리 집 빈방에서 자면 그 돈 안 들어도 되는데.”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집에서 재울 순 없는 일이니 마음 쓰지 마시라고 하고서 저녁을 먹으려고 상을 차렸다. 어머니는 그 할아버지를 또 염려했다.

“그 영감 우리 집에서 저녁 먹으라고 할 걸 그랬다. 밥도 사 먹어야 할 텐데.”

어머니의 말에 동생과 나는 마주 보며 그저 웃었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오래된 가구들을 버리기로 했는데 이사 올 그분이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며 어머니는 뭐든 한 가지라도 더 두고 오고 싶어 하셨다. 쉽게 팔릴 것 같지 않던 집을 사 준 그 할아버지를 어머니는 고마워했고, 무엇보다 그분이 부인도 없이 혼자 어렵게 사는 것 같다며 가여워했다. “할머니가 나를 동생처럼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던 그 할아버지도 어머니의 친절을 고마워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잔금도 받기 전에 현관 비번도 미리 알려주었다. "이제 어차피 그 사람 집인데 미리 알려주면 어떠냐."

나의 어머니가 연세가 많아 정신이 흐려진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머니가 70대 전후였던 것 같다. 그곳이 어딘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머니와 어느 길을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질러가는 길을 두고 약간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그쪽으로 가면 풀들을 밟아야 하잖아" 하셨다. 어머니가 풀이 밟힐 것을 염려하여 가기를 꺼리던 그 지름길에는 막 돋아난 여린 풀들이 바닥을 덮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나는 내심 놀랐다. 60이 넘도록 농사일을 해왔던 어머니가 당신의 발밑에 밟힐 풀들을 걱정하다니. 어머니의 그 마음이 샘물처럼 순수하고 귀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어머니는 극 노인이지만 여전히 아기 같은 순수함이 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천성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넉넉지 않은 그 할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 젊은 시절엔 지나다가 문을 두드리는 나그네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한다거나 하룻밤쯤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그 할아버지에 대한 어머니 마음도 그런 것이었다. 할아버지 또한 그런 나그네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생판 모르는 남을 어떻게 집에서 재울 수 있느냐고 펄쩍 뛰던 내 모습이 나중에 생각하니 오히려 씁쓸했다. 어머니가 틀린 게 아니라 내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오늘날의 사회현상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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