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병에 꽂아둔 생화를 나는 두 손으로 감싸듯 만지며 고개를 숙여 꽃향기를 맡는다. 처음보다 옅어졌지만 달큼한 꽃향기가 후각을 통해 머릿속까지 전달되어 감미롭다. 가져온 지 3,4일 지나는 동안 생기가 떨어져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 장미 한 송이가 안쓰럽다. 다른 꽃들은 아직은 싱싱하다. 이 꽃들이 적어도 한 달쯤 시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소박한 꽃다발은 딸이 내게 준 생일선물이다. 매년 내 생일날이면 각자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모여 외식을 한다. 금년엔 코로나19로 인해 주말에 집에서 모였다. 집에 오기 전 딸이 전화로 물었다.
“ 엄마, 먹고 싶은 거 말해요. 뭐 사갈까? ”
나는 대답했다.
“꽃 몇 송이 사 올래. “
요 며칠 내 기분이 안개 낀 흐린 날 같았다. 생일이 아니어도 기분전환을 위해 꽃이라도 몇 송이 사다 꽂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딸이 내 기분을 다 알리 없을 테지만 '웬 꽃?' 이라고 반문하지 않았다.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꽃집들이 문을 닫아 딸애는 꽃집을 찾느라고 주변을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공연히 딸을 고생시킨 거 같아 내심 미안했지만, 한편으로 딸이 가상했다. 한 두 집 가보고서 ‘평일이 아니어서 꽃집이 다 문 닫았어.’ 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바로 다음날이 월요일이므로 모든 꽃집이 문을 열 테고 꽃 사는 일을 하루 미루면 될 테니까. 엄마 마음을 말없이 헤아리는 속 깊은 애인지라, 딸은 엄마를 위해 생일날 꽃을 꼭 사 오고 싶었나 보다.
내 딸은 표현에 비해 마음이 섬세하다. 엄마의 마음을 잘 공감한다. 그런 한편 이성적이다. 내가 어쩌다 무슨 이유로인지 예민하게 굴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딸은 나를 공감하는 한편 합리적 논리로 설득하거나 이해시킨다. 내가 어떤 문제에 압도되어 답답할 때, 딸의 객관적 판단과 조언으로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내 딸이지만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예전의 나보다 딸이 훨씬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나는 뭣 모르고 젊은 시절을 살았다면 딸은 요즘 젊은 세대답게 체계적이며 지혜롭고 사려 또한 깊다. 그런 딸을 생각하면 참 기특하다. 딸이 고맙고, 내 딸이어서 또 고맙다.
사랑의 시선으로 나를 마주 바라보는 예쁜 꽃송이가 담긴 화병의 물을 새로 갈아주고서, 외출하기 위해 역시 딸의 생일선물인 단풍 빛깔의 모자를 머리에 썼다. 지금 이 순간의 뿌듯한 행복, 그것이면 족하다.